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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九思九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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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선시대 취학 연령의 아이들이 서당에 가면 처음 배우는 게 소학(小學)이었다.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 선생이 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생들은 소학을 통해 예의와 범절을 익혔다. 훈장은 소학 구절을 외우게 했고, 외우지 못한 학생은 여지없이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 소학에 ‘구사구용(九思九容)’이라는 말이 나온다.

 『논어』계씨편(季氏篇)에 뿌리를 둔 ‘구사(九思)’는 ‘군자가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올바른 생각’을 가리킨다. 사물을 볼 때는 분명한지를 생각하고(視思明), 들을 때에는 귀를 기울여 똑바로 들어야 한다(聽思聰). 얼굴에는 항상 온화함이 깃들어 있어야 하고(色思溫), 몸가짐은 공손해야 한다(貌思恭). 또한 말을 함에 있어 충실한지를 살피고(言思忠), 어른을 섬길 때에는 공경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事思敬). 의심스러우면 끝까지 물어 의혹을 풀고(疑思問), 분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일로 인해 더 어려워지지 않을지를 생각하라(忿思難).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먼저 공정한 것인지를 고려하라(見得思義).

 ‘구용(九容)’은 『예기(禮記)』의 구절을 소학에 옮긴 것으로 ‘아홉 가지의 올바른 태도’를 뜻한다. 머리를 똑바로 세워 위엄을 지켜야 하고(頭容直), 눈은 옆을 흘기지 말고 단정히 해야 한다(目容端). 숨소리는 고르고 맑게(氣容肅), 말할 때는 떠벌리지 말고 삼가라(口容止). 또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게 내야 하며(聲容靜), 얼굴에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色容莊). 걸음은 무겁고 신중하게(足容重), 손은 가지런하고 공손하게 모아라(手容恭). 서 있는 모습에서는 덕성이 풍겨야 한다(立容德).

 ‘구사구용’은 율곡(栗谷) 선생이 학문을 시작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쓴 격몽요결(擊夢要訣)에도 소개돼 있다. 우리 선조는 자녀 교육에 그만큼 ‘구사구용’을 강조했다는 얘기다.

 체벌 금지 이후 일선 교육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학생들의 그릇된 태도가 전체 수업 분위기를 흐리고, 선생님의 권위마저 실추되고 있단다. 각 학교 교실 뒤 학습게시판에 ‘구사구용’을 적어놓고, 그 옆에 회초리를 걸어두면 어떨까. 예의범절 교육을 위해 제자의 종아리를 쳤던 훈장의 뜻이 오늘 교실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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