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 한 점에 어죽 한 그릇 … “올 겨울 든든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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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화 사장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어집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 [조영회 기자]

천안 1번 국도에서 유량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장어 고유의 특별한 맛을 살려낸 집이 문을 열었다. 두툼한 살점이 여느 장어집과는 구별된다. 식당 들어가는 입구부터 눈길을 끈다. 출입문 바로 옆. 작은 목욕탕을 연상 시키는 넓은 욕조가 있다. 이곳에 장어 300~400마리가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간혹 서 너 마리가 욕조를 뛰어 넘어 올 때면 직원과 손님들이 장어를 잡기 위해 한바탕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광경일지 몰라도 여기에는 장어의 맛을 살리기 위한 생각이 숨어 있다. 장어는 좁은 수족관에서 일주일 이상 살게 되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운반이나 통관 등의 절차로 상당기간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외국산 장어의 경우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장어랑어죽이랑’은 국내산 장어만 전문적으로 생산, 유통하는 양만수협직매장을 통해 장어를 들여 온다. 주로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서 생산되는 1kg에 3마리 장어만을 고집한다.

 장어는 성숙도에 따라 1㎏에 2~5마리 등으로 판매된다. 크기가 작은 장어는 삼겹살처럼 숯불에 구우면 기름이 빠져 딱딱해 진다. 또 너무 크면 살이 많아 입에서 느끼한 맛이 나기 쉽다. 특히 큰 장어에 양념을 바르면 살과 양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식감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장어 크기와 살점 두께는 장어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집이 유독 3마리 크기의 장어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름지기 양념장어의 맛은 소스에서 비롯된다. 안병화 사장은 장어의 입맛을 돋우기 위한 소스개발에 수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다. 전국 유명 장어집을 찾아 다녀봤지만 대부분 고추장이나 간장에 몇 가지 과일을 갈아 넣은 게 대부분이었다. 이는 안 사장이 원하는 장어와의 일체감을 이룬 맛을 살려내지 못한 그저 그런 ‘장어 따로 양념 따로’ 맛이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마침내 한약재 특유의 맛이 함유된 매콤하면서 느끼하지 않은 소스 개발에 성공했다. 이렇게 직접 만든 소스와 깻잎 절임, 파김치, 백 김치, 부추, 치커리, 상추 등과 싸먹는 맛이 담백·고소하면서도 부드러워 입에 감긴다. 도심과 다소 떨어진 외곽에 있지만 평일에만 200여 명 이상이 장어를 맛보러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점심식사로 제격인 장어와 붕어를 갈아 만든 어죽 또한 일품이다. 저녁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어죽을 먹으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어죽을 만들기까지 시련의 날도 많았다. 어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장사만으로는 인건비와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 생각해 낸 것이 어죽이었다. 점심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고민하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바로 전국에 맛있는 어죽집을 찾아 나섰다. 오피스텔을 얻어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와 인터넷을 통해 어죽 만드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꽝’이었다. 좀처럼 맛이 나지 않았다.

 돈을 주고 기술을 전수받을까 마음 먹었지만 수 천 만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지인에게 부탁해 어느 정도 기술은 배웠지만 여전히 맛은 떨어졌다. 식당은 다 지어가는데 맛이 나지 않아 큰 고민에 휩싸였다.

생각의 전환이 고민을 간단히 해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붕어로 어죽을 끊여왔던 기존 방식에서 장어를 함께 갈아 끊였는데 기존 어죽과는 차별되면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 있는 이 집만의 색다른 어죽이 탄생했다.

 얼마 전에는 장어에 거부감이 있는 손님을 위해 ‘솔잎통돼지갈비’도 만들었다. 천안시 북면에서 소문난 참나무 숯불통돼지 갈비구이집인 ‘선유원’에서 한달간 연수를 받으며 사장이 직접 배웠다.

사과, 배, 파인애플 등을 갈아 넣은 1차 소스를 만들어 8일간 재워둔다. 이후 솔잎가루와 생과일 등을 넣은 2차 소스를 통돼지갈비에 뿌려 숯불로 구워낸다. 그윽한 솔잎과 숯 향을 음미하며 부드럽게 씹히는 맛 때문에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실 안병화 사장은 대기업에서 촉망 받는 간부 출신이다.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전인 1987년 LG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영업관련 데이터를 수기가 아닌 지금의 엑셀에 해당하는 ‘멀티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문서를 만들어 보고하면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입사 6년차에는 컴퓨터 사내 강사도 맡았고 이후 LG전자의 업무 전산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95~96년엔 반기마다 실시하는 스텝부문 업무평가에서 2년간 4번의 금상을 수상한 인재였다. 하지만 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99년 사업을 위해 소위 잘나가는 직장을 포기했다. 아내와 어머니 등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회’라는 굳은 마음으로 직장인에서 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이젠닷컴을 만들어 5년만에 년간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사업가가 아닌 음식점 주인이었다.

 음식에 대한 열정과 애착은 결국 그의 꿈을 이루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장어집을 내기 위해 3년을 준비했다. 전국에 맛있다는 집을 수소문해 경기도 파주·일산·수원·분당을 비롯해 전남 나주 등 전국을 다니며 맛과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조리학원을 다니며 끝없이 연구를 거듭해 만든 결과물이 ‘장어랑어죽이랑’이다.

 음식점을 발전시켜 체인점을 내는 게 최종 목표다. 그는 “싱싱한 장어를 제공해야 고소함과 담백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수족관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며 “2일 이상 장어가 수족관에 있지 않도록 정확한 수요 예측이 필요한 까다로운 일이어서 힘들지만 맛을 알고 찾아 오는 손님이 많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가격은 어죽 6000원, 장어 1㎏ 5만4000원이다.

▶문의=041-569-2244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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