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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탈출'과 공직사회 반부패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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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달 코끼리가 우리를 탈출해 도심을 활보한 적이 있다. 고삐를 놔도 도망갈 줄 모르는 코끼리가 이처럼 기존 습성의 틀을 깬 전례 없는 사건이어서 화제가 됐다. 코끼리가 침침한 폐쇄공간을 과감히 뛰어넘어 자연을 활보한 이야기. 부조리 관행을 파괴하려는 공직사회의 '투명 사회 캠페인'에 이를 비유하면 어떨까.

요즘 공직자의 비리와 부도덕성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올해 들어 장.차관급 공직자 몇 명이 강한 여론 저항에 부닥쳐 불명예스럽게 중도하차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정책 총수였던 어떤 부총리는 수십 년 전에 저질렀던 부동산 취득용 위장전입이 말썽이 돼 사퇴했다. 어떤 차관은 직위를 이용한 교수채용 청탁 전화 한 통화에, 또 다른 차관은 책상 안에 보관했던 100만원의 촌지가 적발돼 옷을 벗었다.

이 같은 그들의 불행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으로 가진 자들의 관행으로 슬쩍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상식이나 관행을 스스로 깨려는 공직사회 미풍도 서서히 부는 느낌이다. 중앙의 한 부처 간부들은 외부인과 식사 때 식대를 각자 지불하는 이른바 '더치페이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부패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던 정치권에는 정당법.선거법.정치자금법 등 이른바 '3대 정치개혁법'을 개정,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도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공공기관.기업.시민단체가 모여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곧바로 이행에 돌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러한 반부패 변화 물결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각도 좀 누그러진 것 같다. 세계적인 국가신용 평가기관인 홍콩의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는 지난 3월 초 '아시아 인텔리전스 리포트'에서 우리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 요즘 한국의 부패는 예전보다 심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문제점은 훨씬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국가 기관들은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반부패 노력을 경주한다면 곧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상황 변화를 깨닫고 과거 행태에서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부패 척결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청렴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직 요원하다. 과거 정부보다는 근본적이고 진지한 부패방지 노력이 서서히 가시화할 뿐이다. 연일 신문 지면의 상단을 차지하는 부패 기사를 보면 나쁜 관행이나 고질적인 악습의 고삐에 얽매여 안주하는 비리 온상이 도처에 깔려 있다. 부패를 방지하는 국가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의 비리 신고 통계는 늘고 있다. 올해 들어 부패 신고 및 상담은 678건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460건보다 47%나 늘었다. 이 가운데는 물론 비리로 볼 수 없는 음해성 투서도 있다. 맑아지기 위한 진통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하지 못한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교실의 부끄러운 촌지, 민원 창구에 들끓는 먹이 사슬, 복마전 멍에를 못 벗은 공공기관 상층부의 이권 개입, 권력 주변에 맴도는 사기 행각…. 이제 스스로 더러운 타성에 젖은 기득권이나 어두운 관행의 울타리를 벗어 버리자. 우리가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마지막 고비는 다름 아닌 부패 청산이다.

김덕만 부패방지위원회 공보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