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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의장국 경험, 미래자산으로 발전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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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는 무엇보다도 G20 체제가 국제 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제껏 열렸던 네 차례의 G20 정상회의는 2008년 말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만 초점을 맞췄고, 위기 이후의 세계경제 이슈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올 6월에 개최된 토론토 정상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조정을 포함해 민감한 이슈들의 결정을 서울 정상회의로 미루고 폐막됐다. 이후 G20 체제가 국제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말만 앞세우는 기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G20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됨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버렸다. 이번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글로벌 불균형 해소와 관련한 주요국 간 갈등을 해소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통화전쟁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라던 환율 분쟁과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에 대해 큰 원칙을 세우면서도 각국에 유연성을 주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G20 정상들은 재무장관들로 하여금 내년 상반기까지 경상수지 불균형에 대한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게 하였다. 환율과 경상수지에 대한 이러한 원칙이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정상들이 함께 참여한 다자회의에서 합의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는 G20 회원국을 포함해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인위적으로 과도한 경상수지 불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G20 체제가 회원국 간 상호 검증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원칙을 최대한 지켜나가도록 모든 회원국들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혹시 통화전쟁으로 번져 또 다른 글로벌 경제위기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들은 이번 서울 정상회담 결과를 통해 상당히 안도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이번 회의는 워싱턴 회의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돼온 여러 의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은행의 자본과 유동성 규제 방안을 확정하고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및 감독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금융규제 개혁안을 마련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개혁도 완결됐다. 사실 IMF 쿼터 조정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많은 전문가들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IMF의 쿼터 조정이 성공적으로 합의된 데에는 의장국인 한국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G20 참여국들의 평가다. 이 문제는 G20의 신뢰와 직결된다는 점을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상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의장국인 한국이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도국 지원 이슈에 대한 결과도 나왔다. 이 두 이슈는 개도국, 특히 G20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국가의 관심 사항이라는 점에서 G20이 세계 전체의 중요한 경제 이슈를 다루는 진정한 경제협의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사실 개도국 지원에는 지금까지 많은 자금이 투입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G20 의제로 채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은 개도국의 빈곤 퇴치보다는 개도국의 ‘능력 배양(capacity building)’을 통해 독립적으로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게 지원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는 등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G20 회원국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개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서울 컨센서스의 다년간 행동계획은 앞으로 얼마만큼 G20 체제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이행해 나가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한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G20 체제 내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뿐 아니라 G20과 G20 체제 밖의 많은 개도국 사이의 가교 역할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의장국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해 온 경험과 우리나라가 세계경제 속에 위치한 특유의 위상이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과 개도국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새롭게 제고된 우리의 위상과 신뢰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펼쳐나가는 데 유익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다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