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같은 사각지대 감지 장치 … 포르셰 ‘NO’ 볼보 ‘YES’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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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카이엔과 볼보 S80에는 사각지대 감지 장치(사진)가 있다. 두 회사의 장비는 이름만 다를 뿐 기능은 거의 같다. 주행 중 운전자의 사각지대에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이 있을 경우 경고등을 깜박여 알려준다. 그런데 국내에선 볼보 S80의 장비만 쓸 수 있다. 포르셰의 장비는 인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르셰 카이엔은 국내에서 이 장비를 빼고 판매된다.

 두 장비는 얼핏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르다. 볼보는 디지털 카메라 방식이다. 사이드 미러 아래쪽의 카메라로 사각지대의 장애물을 읽는다. 반면 포르셰는 주파수 방식이다. 뒷범퍼 양쪽에 숨겨 놓은 센서가 전파를 쏴서 장애물을 찾는다. 그런데 이 주파수가 화근이 됐다. 국내에서 군사용으로 분류된 대역과 겹쳤다. 그래서 인증받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일부 수입차는 리모컨 키의 작동범위도 줄였다. 성능을 낮췄다는 뜻이다. 폴크스바겐 골프가 그런 경우다. 차가 빤히 보이는 위치에서도 리모컨 키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신호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자꾸 버튼을 누르게 돼 배터리가 빨리 닳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이처럼 수입차 중에는 국내 법규에 저촉돼 아예 쓸 수 없거나 기능이 제한된 장비가 꽤 있다.

 조명장치가 대표적이다. 아우디는 자동차 업계에 발광다이오드(LED) 주간 주행등의 유행을 일으킨 브랜드다. 헤드램프(전조등)의 아랫변이나 한복판에 LED를 촘촘히 심어 아우디만의 또렷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아우디의 도전 이후 LED는 자동차의 조명으로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력소모량이 적고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테일램프(후미등)나 보조 조명으로도 쓰인다.

  기아자동차의 K7도 마찬가지다. 헤드램프의 바깥쪽 윤곽이 뽀얗게 빛난다. 기아차의 표현처럼 빛을 점이 아닌 면의 개념으로 확장시킨 경우다. 렉서스나 랜드로버도 최근 LED로 눈 화장을 매만졌다.

 그런데 똑같은 LED를 쓰면서도 국내에선 켤 수 없는 조명도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E클래스와 포르셰 파나메라. 이들 차종은 LED 주간 주행등을 앞범퍼의 공기흡입구에 심었다. 그런데 국내 법규에 따르면 주간 주행등은 헤드램프에 포함돼야 한다. 따라서 이들 차종은 멀쩡히 작동하는 조명을 켤 수 없게 봉인한 뒤 출고된다.

 수입차에만 적용될 땐 빗장이 걸려 있던 기능이 국산차에 채택되면서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렉서스 LS600hL은 양산차 가운데 처음으로 LED 헤드램프를 단 차다. 하지만 국내에 출시될 땐 제논 헤드램프를 달았다. 국내 법규에 LED 주간등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규는 지난해 현대 에쿠스 리무진이 LED 헤드램프를 달고 출시될 즈음에 개정됐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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