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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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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랑이 죄였나. 올봄 인도에서 여기자 니루파마 파탁이 동료와 결혼하려다 목숨을 빼앗겼다. 이른바 ‘명예 살인(honor killing)’. 범인으로 부모가 지목됐다. 딸이 낮은 카스트 남자와 엮이는 걸 못 참아서다. 신분 계급에 따라 삶을 구속하는 카스트 제도가 법으로 금지된 게 60년 전. 인도 사회는 여전히 폐습에 얽매여 있다. 신문에 난 중매 광고조차 신랑·신붓감을 카스트별로 엄격히 나눈다. 하위 카스트 출신은 구직 면접에서도 박대받기 일쑤다. 숱한 이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의 익명성에 묻혀 살아가는 이유다.

 10년 만에 실시되는 센서스(인구조사)가 이 불씨를 건드렸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31년 이후 최초로 카스트를 조사키로 했다. 잊고 싶은 과거를 들춘다며 인도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있는 문제를 없는 척하면 풀리냐고 정부는 맞선다. 숫자를 제대로 알아야 입시·공무원 채용 때 최하층 대상 할당제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최대 센서스를 하고 있는 중국 정부도 벽에 부닥쳤다. 숨기고 싶은 현실을 까발리지 말라는 저항이다. 수천만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길까 봐, ‘한 자녀 정책’을 어긴 부모들은 처벌이 두려워 입을 꾹 다문다. 어렵게 집안에 들어간 조사원들도 칫솔 숫자 세보는 게 고작이다. 앞장서 도와주던 2000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고 자기 소유 집을 가진 요즘, 센서스에 대한 중국인들 반응은 이렇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센서스 역사가 원래 그랬다. 수천 년 전 중국과 이집트, 바빌로니아에서도 국가와 국민이 엄청 밀고 당겼다. 집 구석 사정을 속속들이 알려봤자 돌아오는 건 더 많은 세금과 부역이었으니까. 적국에 약점을 알리기 싫은 속내도 걸림돌이었다. 영국 의회가 1753년 처음 제출된 센서스 법안을 부결시키고 40여 년을 더 미룬 건 그래서다. 외침을 겁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1969년 첫 조사 후 인구 수를 두 배로 부풀리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센서스는 잘 돌아가고 있다. 인터넷 조사 참여율이 목표치(30%)를 넘어 41.7%(4일 기준)에 달했다. 캐나다(18.5%)의 기존 최고 기록을 훌쩍 웃돈다. 자원봉사 확인증이란 당근이 주효했던 걸까. 아니면 “국가가 해줄 게 많다”고 믿는 착한 백성들이어서일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