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많은 시행업계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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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트럼프월드 아파트 시행사인 하이테크하우징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부동산 개발 관연 시행사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동산개발과 관련해 최근 잇따르는 각종 비리와 부정에는 관련 시행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은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건설·부동산업계에 시행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다. 건설업체들이 인력 구조조정과 업무영역을 줄이면서 땅 매입을 시행사들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시행사가 땅을 구해 공사를 의뢰하면 시공사는 은행에 보증을 서고 땅값 지급을 위한 대출을 일으킨다. 시행사는 땅을 구할 때 계약금(매매가의 10%)만 지급하면 되므로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덩치 큰 사업을 할 수 있다.

시공사로서도 토지매입이라는 피곤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공사비를 따먹으며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부동산개발업계는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부동산 시행사만 6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지난 2001년 이후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시행사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건설업체에 근무하다 독립한 사람은 물론 토지 중개인까지 법인을 만들어 시행 대열에 참여했다. 땅을 한 평이라도 갖고 있는 제조업자는 물론 대박을 노린 변호사·의사 등도 개발업을 꿈꾸며 시행사를 만들었다.

현대산업개발의 한 임원은 “부동산 개발업이 활황이었던 2002년 당시에는 하루에 10여건의 사업이 의뢰됐다”며 “같은 땅을 두고 여러 시행사가 달려들어 땅따먹기 싸움까지 벌일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일부 시행사들이 ‘한 탕’에 빠져 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는 경우다. 특히 대규모 쇼핑시설 개발에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데 동대문 굿모닝시티가 대표적이다. 땅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시공사만 끌어들여 분양함으로써 소비자만 낭패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시행사의 역할에 대해 부동산 개발업의 전문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개발시장을 어지럽히고 분양가를 올리는 주범으로도 몰리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체인 (주)신영의 정춘보 사장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시행사들이 아파트 품질보다 돈벌이에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개발업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 건설업체가 땅매입부터 공사까지 모두 할 때(시행과 시공을 겸할 때)는 기업이윤이 뻔했지만 지금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똑같은 이익을 챙기려하기 때문에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즉 아파트 사업에서 사업이익을 10% 정도로 보는데 시행사와 시공사가 각 10%씩을 챙기려니 분양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시행사를 상대하는 시공사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시행업체가 좋은 땅을 잡아오면 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겨주는 이익보장제를 공공연히 제시한다. 최근 L건설이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구에서 땅주인인 W건설에 8백억원의 이익을 보장해 말썽을 빚었으며 N건설도 다른 업체에 5백억원의 이익을 챙겨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첨으로 운좋게 땅만 받으면 수백억원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설계에서부터 인·허가, 시공, 입주까지의 모든 일을 시공사가 알아서 해준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얻는 이익의 전부는 분양가를 부풀려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이익의 일부는 정치권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각종 인·허가와 편의를 부탁하면서 정치권에 청탁함으로써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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