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잊힌 '극한의 삶'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세계적 재난 중에서 올해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로이터 재단이 운영하는 인도주의 뉴스 웹사이트 '로이터 얼러트넷'이 학자.언론인.구호 전문가 등 100여 명에게 물었다. 9일 로이터 통신에 발표된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잊힌' 세계적 재난으로 콩고 내전을 1위로 꼽았다. 2, 3위로는 우간다.수단의 내전이 꼽혔다. 통신은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국가에 상상을 초월한 국제 지원이 쏟아진 반면 콩고처럼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분쟁지역 주민들은 세계로부터 잊힌 채 극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해일과 콩고 내전에 대한 지구촌의 반응이 대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지진해일이 더 단순하고 극적이며 시각적인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덕분에 신문.방송에서 지나칠 정도로 지진해일 소식을 전했다는 것이다. 반면 가뭄이나 분쟁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채널4뉴스의 국제 담당 에디터는 "아프리카 재난 취재는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며 "특히 항상 같은 얘기에 뾰족한 해결방법도 없는 절망적인 소식이어서 다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서방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영국 구호기관 티어펀드의 에이미 슬로럭은 "아프리카의 극한 상황은 매달 지진해일을 두 번씩 겪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지원 담당 사무차관과 미국의 좌파 지식인 노엄 촘스키 등 전문가들은 에이즈와 말라리아.결핵 같은 전염병을 "소리 없는 쓰나미"라며 "전염병에 의해 매년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덴마크 국제학연구소 연구원 곰 올젠은 수단의 한 남자에게서 받은 편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아프리카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카메라 앞에서 죽는 것은 복받은 것이죠. 최소한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 잊힌 세계의 재난들…콩고 5년 내전400만명 숨져

전문가들이 꼽은 '잊힌'세계의 재난 1~10위에는 아프리카.남미.아시아 등 지역 8곳이 들어 있다. 콩고.우간다.수단.서아프리카.콜롬비아.체첸.네팔.아이티 등이다.

1위로 꼽힌 콩고 내전은 1998년 이후 40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으로 인한 전염병과 식량 부족이 주요 사망 원인이다. 공식적으로 내전은 2003년에 끝났지만 폭력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동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하루 1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성폭력에 희생됐다. 유엔은 구호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주민이 3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위로 꼽힌 우간다에서는 군부와 반군의 내전이 18년 동안 이어지면서 10만 명이 숨졌다. 소홀히 다뤄진 재난 3위에 오른 수단 사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장기간 진행된 내전이다. 21년간 내전 끝에 남부 지역에서는 수만 명의 사망자와 20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수단 다르푸르에서 아랍계 민병대가 흑인 민간인들에 대해 대량 학살과 성폭행을 자행했다. 아슬아슬한 휴전이 유지되고 있지만 2년 전부터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다시 대학살이 벌어지면서 200만 명이 숨지고 400만 명이 피란 생활 중이다.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 전염병은 지역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재난이다. 세계 에이즈 감염자 4000만 명의 3분의 2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 있다. 이 지역 성인의 30%가 에이즈 감염자라면 이로 인한 고아는 1400만 명에 이른다. 중국.인도에서 감염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