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경제자유구역'을 자유롭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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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일 보고서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경제정책 개혁'에서 한국에 대해 지속적 경제 자유화를 권고했다. 거기서 거론된 자유화 조치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경제자유구역에 한정된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혜택의 전면적 확대다.

OECD의 권고는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자유구역 내조차 자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사정이다. 대표적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신도시의 건설이 자유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에 묻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송도신도시가 동북아의 상공업 중심지를 지향하므로 발전된 기반시설은 필수적이다. 특히 병원과 학교는 그렇다. 병원과 학교가 발전하려면 둘레의 공동체들에서 고객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송도신도시의 병원.학교들에 대해선 그런 기본적 자유조차 제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그들은 송도신도시 내의 병원과 학교를 우리 시민들이 이용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공교육과 의료체계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예상은 맞지만 생각은 권위주의적이고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자유구역(free zone)이나 자유항(free port)은 원래 높은 관세와 복잡한 세관 규제가 교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자유항의 효시는 12세기 말엽부터 거의 4세기 동안 번창했던 북부 독일 항구도시들의 상업연합인 한자동맹이었다. 특히 함부르크와 브레멘은 자유항의 정신을 잘 살려 오랫동안 번영해 왔다. 현대에선 뉴욕.싱가포르.홍콩이 대표적인 자유항들로 번영을 누렸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 자유화로부터 누리는 혜택이 둘레의 공동체들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어리석다. 경제자유구역은 본질적으로 실험사업(pilot project)이다. 작은 곳에서 먼저 자유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언어 시장의 자유화는 그런 정책적 실험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모든 언어가 자유롭게 경쟁한다면 사람은 대부분 세계 표준어가 된 영어를 쓸 것이다. 따라서 영어 공용은 실질적으로는 언어 시장에서 민족어들이 차지한 독점적 지위를 허물고 시장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화폐 시장의 자유화도 중요한 정책적 실험이다. 달러가 표준 화폐이므로 아마도 경제자유구역에선 달러가 기본 화폐가 될 것이다. 그것은 기본 화폐를 원에서 달러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자유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자유화에 철저할수록 경제자유구역은 더 크게 번성할 터이고 궁극적으로 그 배후지인 우리 사회도 큰 혜택을 입을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의 자유화가 기성체제를 위협하므로 자유주의 정책들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지금 경제자유구역의 발전에서 걸림돌은 교육 문제다. 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질 학교에 우리 학생들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과실송금을 제한한다는 주장에 막혀 필요한 법률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경제자유구역에 학교를 세우려는 외국인들이 나타나지 않고, 학교가 없는 곳에 기업들이 들어올 리 없다. 교육 시장의 자유화를 막는 것은 자유구역의 개념과 목적을 훼손하는 일이다. 본질적으로는 교육 소비자들인 학생들로부터 선택의 자유를 빼앗자는 얘기이며, 일반 시민들의 복지보다는 기형적 체계에서 일부 계층이 누리는 이익을 앞세우는 주장이다.

워낙 민족주의의 사조가 거센 사회인지라 우리 사회의 자유화는 쉽게 이뤄질 수 없다. 바로 그런 사정이 경제자유구역에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한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아 경제에 전념하겠다고 나선 현 정권이 먼저 관심을 보여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경제자유구역의 발전이다. 그런 발전은 자유화의 전면적 추진이 절실히 요구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