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마음은 갈대? … 삼성전자 ‘팔자’서 ‘사자’로 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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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생각이 바뀌었나.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21~27일 5거래일 동안 414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283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던 데서 180도 태도가 바뀐 것이다. 외국인들은 특히 이달 삼성전자·인텔·애플의 실적 발표 이후 삼성전자를 집중적으로 내던졌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경기 전망이 뿌옇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텔 실적 발표 직후인 13일에는 하루에만 127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그러다 갑자기 삼성전자를 그러모으는 이유가 뭘까.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호조이고, 삼성전자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 하반기에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IT 종목이 전반적으로 약세였다. 미국 경기가 좋지 않아서다. 세계 IT 최대 소비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소식에 반도체값이 떨어지고 투자자금은 IT주들로부터 빠져나갔다. 그러다 이달 중순 막바지께 다른 소식이 들렸다.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이다. 이는 주식시장에 악재였다. 경기가 아주 나빠 미국이 돈을 잔뜩 풀 것이라고 기대해 미리 증시에 들어왔던 돈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삼성전자에는 희소식이었다. 미국이 괜찮다는 것은 IT 경기도 걱정만큼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삼성전자를 등졌던 외국인들이 다시 매수를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풀린 돈에 의한 ‘유동성 장세’ 덕도 있다. 유동성 장세의 특징은 싼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다는 것. 삼성전자는 IT 경기에 대한 비관론 때문에 지난달부터 이어진 상승장에서 소외됐다. 그 때문에 가격 매력이 커졌다. HMC투자증권 노근창 연구원은 “현 주가로 따진 삼성전자의 2010년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 수준으로 지난해의 10.7배에 비해 많이 저평가됐다”고 말했다.

 KB투자증권 서주일 연구원은 “반도체가격이 많이 하락하면서 세계 반도체업계 간에 치킨게임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다”며 “치킨게임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반도체업체 중에 재무구조가 가장 튼튼한 삼성전자가 유리하다는 판단에 외국인들이 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에 외국인들의 강한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지만 주가는 옆걸음질 치고 있다. 외국인들이 순매수로 전환한 21일부터 27일까지 74만500원에서 75만3000원으로 1% 오르는 데 그쳤다. 국내 주식형 펀드 환매 때문에 자산운용사들이 연일 삼성전자를 내다 팔고 있어서다. 그러나 ‘싸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들이 삼성전자에 몰리는 이상 어느 정도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증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요즘 같은 유동성 장세의 특징은 싼 주식에 매수가 몰리다 값이 오르면 다른 주식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며 “삼성전자도 가격이 좀 오른 뒤에는 외국인 매수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수출주 순매수=이달에는 한때 통화전쟁의 공포가 번졌다.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올라 수출주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에서 나왔었다. 하지만 외국인은 여기에 구애받지 않았다. 10월 외국인 순매수 1~10위 중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상반기 기준) 종목이 7개였다. 1~3위는 현대차(수출 비중 56.4%), LG화학(62.7%), 기아차(60%)였다. 반대로 순매도 1~10위 중에서 수출 비중이 50%를 넘는 종목은 삼성물산이 유일했다. 동부증권 장화탁 주식전략팀장은 “외국인들이 막연한 환율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업황과 개별 기업의 이익 추이를 살펴 투자할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 엔화가 초강세여서 수출주가 받는 타격은 그리 심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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