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腐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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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곳간에 고기를 쌓아 놓고 오래 두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썩는다. 한자 ‘腐(부)’는 이를 형상화한 글자다. 문서나 재물을 쌓아 두는 창고(府)와 고기(肉)를 조합해 만들었다. 고대 자전인 『설문(說文)』은 ‘腐’를 ‘숙성돼 문드러지는 것(腐, 爛也)’이라고 해석했다. 화학작용으로 물질이 썩어 들어가면 부식(腐蝕)이요, 문장이 옛것에 얽매여 신선하지 않으면 ‘진부(陳腐)’다. 또 권력이 썩어 문드러지면 ‘부패(腐敗)’가 된다.

 ‘부패’에서 ‘敗(패)’는 갑골문에 나오는 글자로, 커다란 솥(鼎) 옆에 한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支) 모습이다. ‘소중한 일이나 사물을 망가뜨려 그르친다’는 뜻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법이 허물어지면 나라가 혼란스럽다(法敗則國亂)’는 말에 그 의미가 온전히 살아 있다. 싸움에 져 등(背)을 보인다는 뜻의 ‘패배(敗北)’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부패’의 원래 뜻은 ‘썩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한(漢)나라 시기 윤리책인 『한시외전(韓詩外傳)』은 올바른 정치를 얘기하며 “나라가 민간의 힘을 억지로 빼앗지 않고, 병역은 기한을 넘기지 않는다. 백성들은 기꺼이 밭을 갈고, 집에는 수확한 곡물이 가득하다. 백성들은 절대로 추위에 떨거나 굶지 않고, 음식은 썩지 아니한다(不奪民力, 役不踰時, 百姓得耕, 家有收聚, 民無凍餒, 食無腐敗)”고 했다.

 부패가 ‘정치권력의 사리사욕’이라는 의미로 넓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청(淸)나라 말기 이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청말 학자 장빙린(章炳麟·1869~1936년)은 “만주정권의 신정(新政)은 강희제와 옹정제 2대뿐이었으며, 지금의 권부는 부패해 좀먹고 있어(腐敗蠹蝕)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또 “무릇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流水不腐, 戶樞不蠹)”고 했다. 고여 있으니 부식되는 것이요, 끼리끼리 어울려 이익을 나누니 부패가 자란다는 얘기다.

 C&그룹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나하나 들출 때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기업비리는 권력층 부패 사건으로 확산될 움직임이다. 힘없는 서민들이 기꺼이 밭에 나가 일하고, 집에는 먹을 게 충분히 쌓이는 날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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