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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도 폐지하면 지역갈등 더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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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치권이 행정구역을 개편하겠다고 한다. 여야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현재의 광역시.도를 폐지하고 기초자치단체를 통.폐합, 인구 100만 명 이하의 자치단체를 60~70개 만들겠다고 한다. 행정계층을 축소함으로써 지역감정을 완화하고 행정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에 대해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은 행정수도 이전보다 더 큰 파급력을 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야 모처럼의 합의라지만 무언가 방향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행정구역 개편은 국가 운영의 근간을 개편하는 것인 만큼 다양한 변수가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구상은 의원 선거구 등 정치적 변수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발전이 정치 이기주의에 희생되는 듯한 형국이다.

여야가 구상한 내용의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균형발전과 자치 분권에 역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국의 각 지역을 자치권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규모로 분리해 버리면 지방의 수도권 및 중앙정부 예속은 더욱 심화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부산과 경남,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의 예에서 보듯이 광역 지방정부 간에 행정단위가 지역산업 발전을 지원하지 못해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더 잘게 쪼갠다면 지역갈등이 더욱 빈발할 것이고, 중앙정부는 이를 조정한다며 힘을 더욱 강화해 갈 것이다. 물론 정부는 시민주권 시대에 조정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둘째, 지방이 세계와 교류하는 시대조류에 역행한다. 이른바 세방화(世方化)로 일컬어지는 현시대에 지방정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세계 도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크기만으로도 한계가 있는데 도시를 더 잘게 파편화한다면 '세계 도시'가 아니라 '소도읍'만 양산돼 모든 시설이 국내용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점검하면서 국가 비전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논의돼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지방 행정체계를 100년 미래 한반도 공간을 기획한다는 큰 차원의 그림으로 접근해야 한다. 본격적 세방화 시대에 국가 및 지방경제의 성장, 한반도 통일국가 차원의 생태보전 구상, 신기술 시대의 지역산업 클러스터 구상, 포괄적 의미의 지역혁신 구상, 미래 철도.도로망 구상,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상호 모순되지 않도록 설계돼야 한다.

둘째, 재정적으로 각 지역의 자치 분권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방향을 잡는다면 현재 정치권이 구상한 것과는 반대 방식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즉 남한 국토를 4~6개의 거점도시 중심으로 단일 행정구역으로 만들어 지방의 역량을 키우고, 그 성과를 국가가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한 100년을 갈 국가 발전의 큰 기틀이 보다 건강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잘 짜이기를 기대한다.

고영삼 울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