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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 여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계, 부부 건축가 김선현·임영환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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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계한 김선현 대표(왼쪽)·임영환 교수 부부는 “경건하면서도 친근한 기념관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념관 완공에는 설계 2년, 공사 1년 6개월 등 총 3년 6개월이 걸렸다. [조용철 기자]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새집’을 장만했다. 중국 뤼순 감옥에서 3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안 의사 순국 100주기를 기념해 서울 남산에 새로 건립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www.patriot.or.kr)이 26일 문을 연다. 지난해 철거된 구관의 뒤편 광장 자리다. 연면적 3756㎡(건립비 179억 원)의 새 기념관은 파격적이다. 웅장한 형태의 고답적 기념관과 거리가 멀다. 12개의 반투명 네모 기둥 형상이다. 최대한 장식을 배제했다. 반듯하고 단정하다. 반투명 유리 재질로 덮인 모습도 독특하다.

설계자는 부부 건축가 김선현(38·디림건축 대표)씨와 임영환 교수(41·홍익대·디림건축). 2007년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21일 남산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기념관은 안중근의사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장 박유철)·국가보훈처·국민성금 등 각계각층의 지원으로 완성됐다.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다”고 말했다.

-12개의 기둥에 의미가 있나.

 “1909년 무명지(無名指·넷째 손가락)를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12인의 단지동맹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이곳엔 신사참배를 하는 조선신사가 있었다. 치욕의 땅을 딛고 당당하게 서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12’라는 숫자에는 단지 한 사람을 기념하는 것 이상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안 의사 개인이 아니라 그와 뜻을 함께한 11명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26일 재개관하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에 설치돼 있는 안 의사 동상과 왼손 약지를 잘라 태극기에 쓴 혈서. [연합뉴스]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의도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건물을 바라보며 완만한 경사로를 걸어 내려가서 모퉁이를 돌아야 문을 만난다. 안 의사의 유묵이 새겨진 벽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이 길은 왁자지껄한 현실공간에서 경건한 추모공간으로 들어가는 다리 같은 곳이다.”

-기념관은 대개 석조건물이다.

“주변에서 위엄을 살리기 위해서는 돌을 쓰라고 많이 권했다. 재료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엄숙함만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남산의 자연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단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반투명 유리(U글래스)는 밤에도 주변을 은은한 빛으로 비춰준다.”

-부부라서 힘들었던 점은.

“지난 4년간 둘이서 ‘24시간 대기’로 일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식사를 할 때도, 아이들을 돌볼 때도 토론에 빠지곤 했다. (웃음) 부부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이들은 홍익대 재학시절 만났다. 올해로 결혼 14년째다. 임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축대학원을 나왔고, 김 대표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뒤늦게 하버드대 건축대학원(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을 마쳤다.

-아쉬운 점이라면.

“추모공간인 만큼 설계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건축가로서 여러 의견을 조율해야 했으나 중요한 회의에 배제되기도 했다. 건축과 전시가 각기 따로 추진된 것도 아쉽다.”

 이들 부부는 안 의사 기념관 설계로 ‘문화부 2010 젊은 건축가상’과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광현 교수(서울대 건축학과)는 “다른 기념관과 달리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투명하지만 과묵하다.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 묵묵히 읽혀지는 것처럼 과묵하게 주변을 장악한다”고 평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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