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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미국 합동전력사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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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할 줄이야….”

 지난달 13일 한국 언론 최초로 미 합동전력사령부(USJFCOM·버지니아주)를 취재하면서 든 느낌이다. 이곳은 ‘미국의 군사전략 혁신을 선도해온 실험실’이라고 불린다. 사령부의 핵심 포스트 중 딱 한 가지만 예(例)를 들겠다. 합동전투센터 팀 베이커 국장이 “우리가 위기상황에서 지휘관의 전략적 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곳을 둘러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방송국이었다.

 CNN을 본떠 ‘월드 뉴스 네트워크’(WNN)라는 이름의 이곳은 말 그대로 방송국이었다. 뉴스 앵커가 앉는 세트에서부터 카메라, 각종 전송 기자재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훤칠한 키의 앵커 길 윌리엄스가 보도진과 제작진을 일일이 소개했다. 기자는 각종 국방 관련 소식을 전하는 군내 방송국일 걸로 짐작했다.

 윌리엄스는 기자를 앵커 자리에 앉혀놓고는 “이곳은 평범한 방송국은 아니다”며 “여기서 만드는 뉴스는 모두 가상(假想)의 뉴스”라고 말했다. 전쟁이나 국가 재난사태에 대비한 미군의 중요 훈련이 있을 때마다 그 상황에 적합한 가상의 뉴스를 만들어 작전 지휘부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과연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할까. 사령부가 사전에 이런 경험을 거쳐야 실제 위기상황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디어 트레이닝 센터’인 셈이다.

 제작진은 한 달 전에 만든 파나마 지역의 태풍을 다룬 5분짜리 뉴스 영상을 보여주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현장에서의 기자 리포트, 기상학자까지 동원한 태풍의 예상 진로 분석, 피해 복구와 구조 작업의 진척상황 보도는 실제 뉴스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옆에 서 있던 영상(映像) 속의 기자가 말했다. “현장 책임자는 자신과 자신의 팀이 태풍에 적절히 대처한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은 반대로 미처 구조되지 못한 10여 명에 초점을 맞춰 보도할 수 있다.” WNN 뉴스는 지휘부가 잊거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는 효과를 노린다. 실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언론 보도에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1997년 이 스튜디오가 만들어진 이후 1년에 약 300개의 뉴스 영상물을 제작해 왔다”며 “지난 8월엔 한국의 을지포커스 훈련을 포함해 47개의 영상물을 만드느라 정신 없이 바빴다”며 웃었다. 최근 WNN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미국과 문화가 크게 다른 나라에서 여러 국가가 함께 연합해 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에 뉴스 제작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지 언론을 모니터링하면서 다양한 그들만의 관점을 배우고, 해당국 언어로도 뉴스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커 국장은 “WNN의 목적은 지휘관이 결국 현장의 여론을 반영하는 언론과 함께 일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한국도 천안함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지 않았느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