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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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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선시대 왕들도 출산 장려에 힘썼다. 전염병 한 번 돌면 인구 3분의 1이 예사로 줄어서다. 세 쌍둥이 이상 낳으면 쌀과 콩 10섬을 내렸다. 당시 쌀 10섬이면 다랑논 열 마지기 값이다. ‘출산축하금’치곤 꽤나 통이 컸다.

 『명종실록』은 강원도 원주에서 세 쌍둥이, 경상도 양산에선 네 쌍둥이가 태어난 경사를 전한다. 몇 년째 흉년이라 호조가 쌀 한 가마만 내리자는 건의를 올렸다. 하지만 명종은 “국고가 당장 바닥나는 건 아니지 않으냐”며 호통쳤다고 한다. 인구 확충 의지가 그만큼 대단했다(장학근, 『우리가 몰랐던 조선』).

 춘추시대 때 월나라를 패자로 만든 명재상 범려(范蠡). 그가 나라의 세를 키운 비결 중 하나도 출산 촉진책이었다. 혼기를 넘긴 처녀·총각이 결혼을 안 하면 부모를 벌했다. 나이차 많이 나는 혼인은 출산에 도움이 안 된다며 금했고 과부·홀아비의 재혼을 북돋았다. 그러나 훗날 거상(巨商)으로 변신할 만큼 경제 감각이 있던 범려는 알고 있었다, 이들 정책의 딜레마를. 먹을거리 없이 인구만 늘면 재앙이 될 걸 말이다. 그가 농업과 양잠에 매달린 것도 그래서다.

 이런 이치를 몰라 낭패를 본 게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였다. ‘인구=국력’이라며 집권 후 낙태와 피임을 전면 금지했다. 거듭 임신에 실패한 여성에겐 세금도 물렸다. 1년 만에 출산율이 두 배로 뛰었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을 맞은 건 식량 배급조차 힘든 피폐한 경제였다. 20여 년 후 이들이 그를 축출하는 시위의 주역으로 나선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최근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청년층이 앞장서는 것도 그럴 만하다. 정년을 늘리면 자기들 일자리가 더 준다는 것이다. 20%를 웃도는 실업률로 고통 받는 ‘불안한 세대(Generation Precaire)’의 비명이다. 문제는 10년 후다. 파격적 출산 지원으로 90년대 후반 이후 ‘제2의 베이비붐’을 구가 중인 프랑스다. 과연 그 많은 아이들에게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프랑스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면 너무 걱정이 앞서가는 것일까. 저출산 대책도 급하지만 미래의 먹을거리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듯하다. 나중에 “일자리도 없는 나라에 왜 낳아 놓았느냐”며 애들이 거리로 나서는 꼴 보지 않으려면….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