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을 잔치 … 샴페인 마신 김재현, 맥주 들이켠 양준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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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 사내는 샴페인 세례를 받았지만 한 남자는 안 마시던 맥주를 들이켰다. 한 사내가 스포트라이트 속에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을 때 한 남자는 어둠 속에서 후배들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올해를 끝으로 프로야구를 떠나는 두 명의 베테랑 타자 김재현(35·SK·사진 오른쪽)과 양준혁(41·삼성·왼쪽). 그들의 현역 마지막 가을 잔치는 그렇게 엇갈렸다.

 19일 SK의 4연승으로 싱겁게 끝난 한국시리즈(KS)는 SK나 삼성에나 승부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벤트였다. 17년 넘게 그라운드를 누빈 두 팀의 정신적 리더인 김재현·양준혁의 고별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김재현은 지난해 KS를 앞두고 불쑥 “1년 만 더 뛰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KS에서 KIA에 3승4패로 진 뒤 “반드시 우승을 탈환하겠다”며 마지막 목표를 제시했다.

 현역 최고령 타자였던 양준혁은 매 경기 각종 타격 부문의 통산 기록을 새로 쓰던 올해 7월 말 갑자기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약속대로 9월 19일 대구 SK전을 통해 은퇴식을 치렀다. 후배들은 정규시즌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대선배의 마지막을 연장시켰다. 양준혁은 비록 26명의 출전 선수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두산과 플레이오프(PO)에선 더그아웃에 앉아 후배들에게 조언과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둘 중 한 사람만 해피엔딩을 맞을 수밖에 없는 승부의 세계. 승리의 여신은 김재현의 손을 들어줬다. 김재현은 KS 1차전에서 역전 결승타를 치며 경기 MVP를 차지했다. 3차전에서는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 승리에 기여했다. 4경기에서 타율 0.286(7타수 2안타)에 타점은 박정권(6개) 다음으로 많은 4개를 올렸다.

 양준혁은 진한 아쉬움 속에 현역 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KS 시작 전부터 김성근 SK 감독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며 엔트리에 없는 양준혁의 더그아웃 입장을 용인하지 않았다. 인천 원정 경기였던 1, 2차전을 구단 버스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홈 대구에서 열린 3, 4차전에선 라커룸과 관계자실을 떠돌며 마주 치는 후배 선수들을 응원하다 막판에는 더그아웃에 잠시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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