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사라진 북한 모시조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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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식탁을 장식하던 북한산 모시조개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모시조개는 북한의 대일 수출품 가운데 가장 많다. 하루아침에 수입이 중단된 게 아니다. 일본 정부가 올 들어 원산지 표시 의무를 강화하고 단속을 시작하자'북한산'이란 표시가 사라진 것이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유골 문제로 급격히 나빠진 일본인들의 반북 감정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북한을 겨냥한 선박 운행 관련 규제 법안이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북한의 모시조개 대일본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일본산 둔갑 판매=농림수산성은 지난달 전국 650곳의 소매점을 대상으로 원산지 표시 실태를 조사했다. 그러나 단 한 곳에서도 북한산 모시조개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산 당국자는 "중국산이나 국산으로 둔갑시켜 유통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납치 피해자 가족 모임'등은 올 초에 북한산 수산물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에 신중한 자세로 일관하자 실질적인 제재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유통업체나 식품업체 등이 소비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북한산 상품의 취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시조개의 수입 거점인 시모노세키(下關)에는 최근까지도 모시조개를 실은 북한 어선이 여전히 입항하고 있다.

통계수치에도 큰 변화가 없다. 일본 당국은 원산지 표시가 필요없는 초밥집 등 외식 업체나 가공 업체에서 북한산이 주로 소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는 수입 항구에서 곧바로 양식업자에게 넘겨져 수개월 동안 길러진 뒤 일본산으로 둔갑해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위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업자들은 "요즘 정직하게 북한산이라고 표시하면 국민 감정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며 변명하고 있다.

◆ 북한산 모시조개=북한은 지난해 3만2000t을 수출해 45억 엔을 벌어들였다. 일본 내 소비량의 35~40%를 차지한다.

지난해 273억 엔이었던 북.일 무역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다. 북한은 판매 금액으로 중고자동차.농기구.섬유 원단 등을 수입해 갔다. 이 때문에 일본이 대북 경제 제재를 실시할 경우 최우선 규제 대상으로 꼽힌다. 자민당 북한 제재 시뮬레이션팀은 지난달 중순 "게 등 다른 수산물과 달리 제3국에서의 가공을 통한 우회 수출이 힘들어 제재 효과가 가장 크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선박유탁(油濁)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1일부터 시행됐다. 100t 이상 선박은 선주책임보험에 가입해야 일본에 입항할 수 있다.

지난해 만경봉호를 포함해 100여척의 북한 선박이 일본에 입항했으나 지난달 말까지 보험 가입 절차를 마친 선박은 16척에 그쳤다. 일 정부가 이 법을 엄격히 시행할 경우 북한산 수산물의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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