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공무원 시인’ 3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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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시인, 왠지 어울리는 단어다. 천안시청에 근무하는 시인 세 명이 시청 정원에 모여 문학과 인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유두현 팀장, 박성은씨, 박인태씨. [조영회 기자]

다음주 월요일인 18일 오후 7시 천안시청 ‘공무원 시인’ 세 명이 나란히 무대에 선다. 주민생활지원과 유두현(54)팀장, 농축산과 박인태(52)씨, 문화관광과 박성은(여·44)씨는 모두 천안낭송문학회 회원이다. 박성은씨는 이 문학회 회장으로 이날 두정도서관 회의실에서 퍼포먼스를 곁들인 시낭송회를 연다. 박 회장은 “듣고 보는 ‘몸짓이 있는 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참관을 권했다.

‘시인들’이 12일 점심시간 한 자리에 모였다. 대화 주제는 가을 들녁처럼 풍성했다. 유 팀장은 “요즘 시인들은 시를 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를 낭송하는가 하면 이젠 몸으로 표현까지 해야하니 힘들다”며 박 회장에게 “이번 낭송회 때 내 시를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까”하고 묻는다. 설레고 걱정되는 눈치다.

이들에게 시는 생활이다. 학생시절 문학소년·소녀로 이름을 날렸음은 물론이다. 청소년기 방황과 고독을 혼자만 느끼는 양 고민하고 그걸 글로 토해냈다. “청소년 때 시 한 수 안 써 본 사람이 있겠어요. 그 시절엔 모두가 시인이고 소설가 아니었나요.” 박씨는 남학생 시절 연애편지도 많이 썼다고 고백했다. “대상은 물론 현재의 아내였다”고 못 박는다. 유 팀장과 박 회장이 못 이기는 척 수긍한다. 박씨는 “아내가 시집올 때 내가 쓴 편지 잘 챙겨 오라고 신신당부했다”며 “지금도 가끔 꺼내 읽으며 옛날을 회상한다”고 했다.

유 팀장은 한동안 시를 잊고 살다가 2년 전 등단했다. 그는 10년 전 ‘시의 힘’을 톡톡히 봤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업 때문에 그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말 없이 집을 나갔다. 그 때 아들 방에 들어가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시로 옮겨 책상에 놓았다. 제목은 ‘여행 떠난 내 아들의 방에서’였다. 아들의 가출을 ‘여행’으로 표현한 아빠 마음이 애틋하다. 돌아온 아들이 이 시를 보고 감명 받아 나머지 고교 생활을 성실하게 마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박 회장에겐 결혼축시 주문이 많다. “몇해 전 선배가 다른 부서로 갈 때 송별시를 써서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게 소문나 결혼축시로 발전됐다”고 전했다. 그의 축시는 사랑스럽다. 이렇게 시작한다. “철수랑 영희는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처음 보는 눈빛이 사랑의 눈빛일테니까….”

박씨가 성무용 천안시장에게 드린 헌시가 도마에 올랐다. 두 사람이 “가장 큰 아부”라고 웃으며 놀렸다. 박씨가 손사래를 치며 “시장님이 마주칠 때마다 ‘박 시인, 나는 시 한 수 안 써주나?’ 말씀하셨다”며 “차일피일하던 차에 지난 7월 정부 포상을 받아 수상자들 만찬이 있을 때 지어놓은 시를 드렸다”고 말했다. 제목은 ‘사람이 좋더라’. ‘취흥이 돌아 누가 노래를 부르면/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반토막 하모니카를 꺼내/휘이 훠이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좋더라.’

박씨는 세 명중 유일하게 시집을 냈다. “등단하자 주위에서 이 때 안 내면 시집내기 힘 들 것이라 자꾸 권유해 만용을 부렸다”고 말했다. (『당신이라는 나』2008년 12월 발간) 유 팀장이 동조했다. 등단하고선 시 발표도 주저되고 시집 내기는 더욱 두려워졌다는 얘기다. 정년 퇴직때나 한 번 시도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결혼 20주년을 맞아 부부 공동으로 책을 낼 생각이다. 그는 “책 제목은 벌써 『행복어사전』이라고 정했는데 아직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 명이 인터뷰를 끝내고 함께 시청 구내식당에 들어서자 한 직원들이 “시인들이 무슨 바람으로 함께 행차하시나”하며 인사했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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