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벤처기업은 ‘스파링 파트너’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한국은 세계 첨단기업의 테스트 마켓으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대학 진학률 세계 1위,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소비자들의 뛰어난 식별력, 세분화된 시장…. 이런 특징을 지닌 한국에서 성공하면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적·사회적 인프라가 훌륭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환경에서 구글·애플·MS처럼 전문적인 기술력과 집중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탄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분석이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창업 지원, 연구개발비 지원,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등 수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사회적으로 합의를 거쳐야 할 게 있다. 지금 같은 소수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산업 구조에서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기술경쟁력을 가진 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산업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소수와 전체 집단 사이의 공정성을 위한 균형과 견제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인 이익 획득을 목표로 나라의 많은 인재가 의식보다는 지식, 혁신보다는 개선에만 매달리는 수직적 관계가 형성되고 만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한 트랙에 올려놓는 것만이 진정한 공정이 아니다. 우수한 프로를 계속 배출하기 위해 아마추어 육성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프로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줘야 한다. 지금 한국은 최고 선수로의 잠재력을 가진 인재가 육성되기도 전에 기존 선수의 스파링 상대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정책에 앞서 산업 환경부터 올바른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위에서 언급한 우수한 나라의 정책과 방안들이 목표에 부합하는 성과를 낼 수 있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우수한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다.

 어제는 없었던 새로운 기술로 승부해야 하는 벤처기업이 명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별화된 연구개발(R&D)이다. 이를 통한 지식재산의 창출을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범정부적 전략, 대학과 대기업 등과의 연합을 통한 최적 솔루션 개발이 필요하다.

 독일은 8200만 명이 4만 달러의 소득을 누리는 나라다. 800개 이상의 명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은 5000만 명이 2만 달러 소득을 기록하고 있는데, 500개 이상의 명품을 만들면 4만 달러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의 중소 벤처기업들이 500개 이상의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히 국가출연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한국에 있는 26개의 국가출연 R&D기관이 각자 20개의 명품을 만들면 520개의 명품이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사회와 산업을 이끄는 지도자가 이러한 인식에 동참하고 행동해야 한다. 언제나 사회적인 혁신은 변화가 크고 그에 따른 효과의 크기도 크다. 그래서 혁신은 ‘톱 다운’이고, 개선은 ‘바텀 업’이어야 한다.

 조용필씨의 노래 가사처럼 ‘묻지 마라,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고 애쓰는지 묻지 마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지금껏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기에 지금 같은 눈부신 성장 또한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 같이 물어 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없는지. 창의성과 기술력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제 각 분야의 전문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연구개발 노력은 전체 산업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