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야당 자격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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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기.공주 지역에 정부의 12부4처2청을 옮기는 데 찬성키로 한 한나라당은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안을 내놓을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끝까지 반대할 투쟁의지도 없다. 2003년 12월 행정수도이전 특별법 처리에 동조했다가 이게 문제가 되자 "당시엔 17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사죄한 게 한나라당이었다. 그런데 이젠 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안에 찬성하겠다니 이런 정당을 어떻게 공당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표는 "내.외치 담당부서는 서울에 남기도록 했다"면서 "수도는 분명히 지켰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대법원, 일부 부처를 수도권에 남기는 것으로 야당 역할을 다했다고 할 참인가. 12개 부는 옮기고 6개 부는 남는다고 해서 수도이전이 아니라는 주장은 소가 웃을 얘기다. 박 대표가 말한 '무정쟁'이 이런 식이라면 정말 실망스럽다.

책임있는 야당, 집권 의지가 있는 정당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행정부처를 옮겨 땅값.집값을 올린다고 국토의 균형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 발상을 전환해 진정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균형발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고 국민과 충청도민을 설득해야 했다. 그게 국익을 우선시하는 보수의 진정한 모습에 부합한다.

이런 수준의 한나라당이라면 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비판할 자격도 없다. 포퓰리즘 정당의 추종정당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이전은 위헌이라고 헌재가 결정했다. 이 정부가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수도이전을 하는 데 야당이 거들어 주는 것이다. 헌재라는 제도를 깨는 데 야당도 참여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야당인가, 열린우리당 2중대인가.

벌써 여권에선 '단계적 수도이전'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수도가 둘로 쪼개지면 행정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 문제가 나올 게 뻔하고, 그러다 보면 서울에 남은 부처도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한나라당은 뭐라고 할 것인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