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냉동실에 갇힌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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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16일 결혼식 전날이었다. 지금의 시어머니께서 급한 일이 생겼으니 가게를 잠시 봐달라고 전화를 하셨다. 시어머니는 식육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시어머니 대신 한 시간가량 가게를 보고 있었다. 손님도 없고 지루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때였다. 가게 건너편 길목에서 지금의 신랑이 가게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 장난기가 심한 데다 지루함에 지쳐 있던 나는 얼른 고기를 보관하는 냉동실에 숨었다. 신랑이 가게로 들어와 날 찾을 걸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그러나 신랑이 가게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아닌가.

에이 좋다 말았네. 아쉬워 하며 냉동실 유리문을 여는데 이게 웬일. 손잡이가 고장나 열리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휴대전화도 가방에 있는데….

점점 추위에 몸이 떨리고 어둠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문이라도 쾅쾅 두드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건만 그날따라 어찌 그리 손님도 없는지.

사골 위에 걸터앉아 있는데 엉덩이도 얼어 감각이 없고 살갗이 따가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필 평소 안 입던 치마까지 입어 얇은 스타킹을 신은 내 다리도 옆에 있던 소뼈처럼 얼어붙고 있었다.

갇힌 지 20분이 지나고 있을 무렵 시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사력을 다해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이 워낙 두꺼워 밖에서는 '콩콩' 소리만 낮게 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야야, 니 거기서 뭐하노." 깜짝 놀란 시어머니께선 얼어붙은 내 몸을 꼭 안아 주셨다. 곧장 집에 가서 보일러 빵빵하게 온도 올려놓고 이불을 몇 겹씩 덮고 기진맥진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결혼식장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어 휴지를 돌돌 말아 보이지 않게 콧구멍을 틀어막고 신부 입장을 했다. 눈은 퀭하고 화장도 뜨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이었다. 신혼여행 가서도 감기 때문에 3박4일을 코만 풀다 왔다. 지금이야 그날 일로 웃음꽃을 피우지만 정말 그날의 끔찍했던 추위를 잊을 수 없다.

손은미(24.주부.대구시 월성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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