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순수와 호기심의 천재, 최윤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사망이 알려진 지난 주말 우리 일행은 당혹스러웠다. “빈소를 차리지 말라”는 고인의 유지로 추모 공간이 아예 막혔으니 그와 가까웠던 ‘패밀리’는 속수무책이었다. 화장 절차 참관도 불가능했다. 관할인 고양경찰서 등으로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유족과 연락이 안 닿았다. 패밀리란 고인을 비롯해 가수 조영남·이장희 등 ‘재수회’ 멤버인데, 세간 반응에 더 곤혹스러웠다. “울트라 초긍정을 외치더니 배신감을 느낀다” “평소 웃던 모습도 위선이었나?” 내 경우 추석 연휴 통화가 고인과의 마지막이었다.

연휴 모임에 안 보여 위로전화를 한 것이다. 당시 폐수종으로 절망적 상황임을 알았으나, 우린 전처럼 웃고 떠들었다. 통화 중 그가 한 명 한 명 안부를 물었지만, 보름 뒤 벌어질 일의 낌새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나중 들으니 칼럼을 연재하던 ‘여성중앙’ 11월호 원고를 일찌감치 마감했을 정도로 마무리에 깔끔했다. 멍하게 있던 차 패밀리의 급한 연락을 받았다. 5년 전 잡지에 발표했던 고인의 글 ‘미리 쓰는 유서’를 찾았다는 것이다. 불 나게 받아보니 웰다잉 모임에서 강조하던 사회명사의 유서 쓰기 일환이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번엔 내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왜 슬프지 않은 거지? 청춘에 덜컥 요절한다면 가슴이 복받치겠지만 살만큼 살았잖아?” 담담한 첫머리에 이어 자기 삶은 “스스로에게 노력상을 주고 싶다”며 시기별로 5막으로 정리했다. 결혼 이전 “술에 취한 아버지, 언제나 아파 누워 계시는 어머니”와 살던 결혼 이전이 1막이다. 결혼, 그리고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현대그룹 주부사원 공모에 도전해 카피라이터로 등극한 게 2, 3막이다. 그때 입사한 광고회사는 ‘늙은 여직원’ 출현에 경악했다지만 이내 찬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고 회고했다.

“틀니 해줄 테니 정년퇴직하고도 다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인생 역전에 성공했으나 이번엔 IMF 금융위기를 만났다. 용퇴한 뒤 책을 쓴 게 인생 4막 방송인으로 변신한 계기였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삶이란 종장(終章)인 5막. 놀랍게도 지금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고 자부했다. 후회 없는 삶, 도전으로 거듭된 삶에 감사의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능력보다 더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삶의 패배자가 결코 아니다. 지난 10년 대한민국 주부와 청춘을 위한 희망의 메신저였다. 사회 의사가 따로 없었다.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대중정서를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가 쓴 책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 등 고인의 메시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애 후반 삶의 마무리에 그만큼 의연했던 이는 별로 없다. 그의 선택은 고통에 노출된 인간 삶의 조건을 확인해줄 뿐, 말 따로 행동 따로는 아니다. 내 눈에 그의 죽음은 유교·기독교과 또 달리 영웅적 삶과 결단을 숭배했던 헬레니즘 시대 스토아 철학과 맞닿아 있다. 창시자 제논, 로마의 세네카 등은 삶과 우주란 타오르는 불, 이내 스러지는 영원회귀의 과정으로 봤다. 삶이란 본디 삐걱대기 마련인데,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걸 운명이라고 했다. 그걸 잠시 떠올리며 자칭 타칭 순수와 호기심의 천재 최윤희를 보낸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