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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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윤후(1962~ ) '서울' 전문

나이를 먹는 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열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다

변기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스무 살이 수월하게 멀어진다

나는 휴대용 녹음기의 테이프를 갈아끼우고

한껏 볼륨을 올린다

리시버는 내 귀에 깊고

서늘한 동굴을 낸다

새떼가 우르르 시간을 거슬러 날아가고

철제 계단을 울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구둣발 소리

아우성처럼 쏟아지는 오색종이를 맞으며

살아갈 날들이

완전군장을 한 채 진군해온다

열차가 서울역에 닿으면

서른 살이 매춘부처럼 호객하며

나를 따라 붙으리라



한강을 건너 '서울'로 들어가는 것이 20대에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30대로 넘어가는 것으로 비유돼 있다. 시적 화자는 동굴 같은 열차 안에서 서른 살이 기다리는 서울로 나가기 싫은 듯 음악의 '서늘한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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