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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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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자리 만들기가 최우선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에서 일자리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에 힘을 모으는 것은 시의 적절한 일이다.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복지는 없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 중장년층 고용불안 문제 등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최근 교대제 추가 편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으로 고용도 늘리고 경영성과도 좋아졌다는 한 기업의 모범사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로 함축되는 청년실업 대란의 시기에 일자리도 늘리고 경영성과도 좋아지는 방안이 있다니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예비인력 운용을 통한 충분한 휴식과 학습으로 삶의 질도 높이고 생산성도 올린다는 높은 이상에 비해 현실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렇게 좋은 제도가 나왔는데 왜 기업들은 시큰둥한 반응일까. 고용도 늘리고 경영성과도 높이는 혁신적 방안을 기업들이 잘 몰라서인가. 아니면 향후 경영여건이 불투명해 도무지 신규 채용을 할 생각이 애당초 없기 때문인가.

교대제 실태를 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교대제를 운영 중인 기업 가운데 2조 2교대가 46.5%로 가장 많고 3조 3교대 34.8%, 4조 3교대 11.0%로 조사되고 있다. 2교대제는 중소기업에서 많이 운용되고 있고 3교대제는 산업특성상 연중 무휴로 가동되는 석유화학.철강 등 업종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조 2교대가 가장 많다는 것은 현실 여건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근로자들이 교대제를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을 늘리면 연장근로가 대폭 줄어들어 임금이 삭감되기 때문에 교대제를 늘리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기업주 입장에서도 고정비 비중이 높은 우리 인건비 구조상 인력 증원보다는 기존 인력의 연장근로가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인력을 늘리는 데 신중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대 근무조를 늘린 사업장에서 유급 교육훈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유급 교육훈련 시간이라도 늘려 줄어든 근로시간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 인력을 늘리기는 쉽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인력을 줄일 때는 노조의 결사항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도 신규인력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요소다. 노동조합의 동의가 없으면 인력 조정은 물론 배치전환도 경영자 의도대로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힘든 일을 기피하는 세태 때문에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인력 증원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고사하고 더 뽑으려야 뽑을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우리 근로자들의 연장근로 선호 경향은 단지 개인의 기질상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문화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낸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연장.휴일.야간근로 임금할증률의 최저선이 법에 각각 50%로 보장돼 있어 연장근로 선호도가 높다. 산업 일선에서 잔업 명령은 회사가 종업원에게 베푸는 일종의 시혜로 간주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력부족으로 3교대 사업장에서 부분적으로 2교대를 병행하는 경우 근로자들은 3교대 작업반에 배치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근로시간이 적어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게 돼 임금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선진국보다 10% 이상 낮아 가장의 소득에만 의존해야 하는 고용구조의 취약성, '가시고기'로 상징되는 우리 아버지들의 자녀를 위한 희생정신 즉, 내가 좀 더 고생하더라도 자녀만은 보다 나은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겠다는 신념 등도 연장근로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자리 창출이 첨단설비를 갖춘 시장 선도적 기업에 국한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자동 상승하는 연공형 임금제도의 부담에서 기업이 벗어날 수 있도록 직무성과 지향형 임금체계 도입이 시급하다. 임금이 근무연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직무에 따라 결정된다면 굳이 장기근속자 위주의 고용조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 임금이 생산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면 기업들이 신규인력 채용에도 적극 나서게 될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