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세돌 타개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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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1국
[제7보 (77~87)]
黑 .이세돌 9단 白.왕시 5단

왕시(王檄)5단이 백△로 대마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공격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왕시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있다. 대세를 위주로 하는 왕시는 공격이 결코 주종목이 아니다. 평소 그는 공격을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에 자주 공격을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공격의 느낌, 방향에 익숙하지 않고 의지도 박약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이득이 확실치 않은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그는 즐겁기는커녕 불안할 따름이다.

이세돌9단이 77로 엇비슷하게 달아난다. 난해하고 허점이 있는 수지만 이세돌은 마치 확신에 찬 듯 돌을 갖다 놓는다. 프로에겐 누구나 어떤 분야의 감각이 특별히 발달한 주특기가 있다. 이세돌의 특기는 말할 것도 없이 공중전인데 그중에서도 타개가 더 능하다. 수없이 가본 길이기에 몸에 밴 어떤 감각이 '이 돌은 걱정 없다'고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왕시가 오랜 장고 끝에 78로 건너 붙였다. 결단을 내려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한데 이세돌은 79로 우회해 예봉을 슬쩍 피해버린다. 80에도 기다렸다는 듯 81. 타개는 가벼워야 한다. 이세돌은 강온 양면책을 적절히 구사하며 활로를 열고 있다.

80에 대해 누구나 '참고도' 흑 1로 뻗고 싶을 것이다. 강수의 화신이라 할 이세돌은 그러나 이 유혹을 뿌리쳤다. 백 2로 막히면 하변 백의 약점이 사라지며 흑의 위험이 증대된다. 이제 3에 두어도 백은 끊는 대신 4쪽의 두꺼운 벽을 배경으로 6, 8로 더 크게 공격해올 것이다. 일순에 대마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처지가 되고 만다.

이세돌은 드디어 85로 포위를 벗어나 조용히 A의 역습을 노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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