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SW 세계 2위 오라클 창업 CEO 엘리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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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들(idiots), 광기(madness)…. 이런 말, 정치판에서 나온다면 다들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재계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남의 기업에 대놓고 이런 비방을 하면 당장 톱뉴스가 된다.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CEO인 래리 엘리슨(66·사진)의 언행이다. 세계 최대 컴퓨터 메이커 휼렛패커드(HP)를 향해 작심한 듯 독설을 쏘아대고 있다.

8월 초 HP의 마크 허드 CEO가 성희롱 의혹으로 낙마하자 그를 축출한 이사진을 향해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그는 보란 듯 허드를 오라클의 공동사장에 앉혔다. 또 HP가 후임 CEO로 레오 아포테커 전 SAP CEO를 선임한 것을 두고는 ‘광기’라고도 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그의 독설이 단순한 돌출 발언을 넘어 ‘무한 경쟁’에 돌입한 업계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최근 HP·오라클·IBM 등 컴퓨터 업계 대표기업들은 제품,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장비 등을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원스톱’ 공급업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인터넷 서버에 정보를 보관하고 각종 모바일 기기로 이를 언제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cloud) 컴퓨팅’이 각광을 받으면서다.

업종 간 경계도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하드웨어 메이커였던 HP와 델 등이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뛰어들고 있다. 반대로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은 하드웨어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들 사이엔 인수합병(M&A)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제임스 알렉산더 인포테크리서치그룹 수석부사장은 “지난 15년 동안 각자의 영역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 왔지만 이제는 M&A를 통해 다른 영역에 뛰어들어야 시장점유율과 매출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엘리슨이 유독 HP에 대해 공격적인 것도 그만큼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HP와 오라클은 기업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오라클은 IBM과 치열한 경쟁 끝에 74억 달러를 들여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인수했다.

HP의 새 CEO에 엘리슨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 것도 이런 영향이란 분석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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