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자본의 돈놀이 장사 놔둘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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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LG그룹 지분을 대량 매입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IMF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계 자본의 돈놀이 마당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은 1조원가량 투입해 ㈜LG와 LG전자 지분을 5% 넘게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LG의 2대 주주, LG전자의 3대 주주 위치에 올랐다. 이번 투자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소버린이 SK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막대한 차익을 챙긴 경험 때문이다. 2003년 봄 이 회사는 1768억원을 들여 SK㈜ 주식을 매집한 뒤 약 9000억원의 평가차익을 올렸다. 2년 만에 여섯 배 장사를 한 셈이다.

이번 지분 매입이 제2의 SK 사태로 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LG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 데다 LG와 LG전자의 경우 대주주가 36% 이상의 안정적인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 측도 공시를 통해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부인했다. 그러나 소버린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고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국내 2위의 LG그룹조차 은근히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 금융시장이 외국계 자본의 교란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듯한 현실이다. 소버린의 공시가 나오자 LG와 LG전자의 주가는 장외전자거래시장에서 모두 상한가로 치솟는 등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외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M&A를 언급해 주가가 급등하자 이틀 만에 지분을 모두 팔아치웠다. 2003년에는 LG카드 2대 주주인 외국계 펀드가 신용카드 사태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보유지분 19%를 한꺼번에 처분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제는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않듯 금융감독 대상도 국적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 묻지마 식으로 들어온 외국자본이 단물만 빼먹고 달아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국내 자본과 마찬가지로 외국계 펀드의 불공정거래 행위에도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