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옷이 몸을 바꾼다 : S라인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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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37년 11월 잡지 『여성』에 ‘부인의 의복과 색채의 조화’에서 소개된 ‘유(乳)카바’ 만드는 법(옷본) 그림. 당시 여성들은 이와 같은 옷본을 가지고 직접 브래지어를 만들어 입었던 듯하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듯 조선 후기 여성의 몸은 S라인보다는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실루엣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즉 상체는 거의 평평하고 좁아야 하며, 하체는 넓고 풍성한 것이 아름다운 여성의 몸 라인이었다. 이를 위해 가슴 부위는 가슴띠로 강하게 압박해 졸라매었고, 치마는 수많은 속치마를 통해 부풀어 오르게 꾸몄다.

하지만 20세기에는 여성들의 건강을 위해 의복을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된다. 전통 한복은 치마 길이가 너무 길어 바닥의 오물이나 먼지를 치마가 다 쓸고 다니고, 치마를 고정하는 가슴띠를 둘러 흉부를 심하게 압박하기 때문이다(유팔극, ‘여자의복 개량문제에 대하야’, 『신여성』, 1924.11.).

그런데 건강을 위해 개량된 옷은 여성의 몸을 이전과는 달리 바라보게 만들었다. 짧아진 치마 길이는 각선미를 여성의 미적 기준에 새롭게 포함시켰고, 가슴띠로부터의 해방은 여성의 몸이 가진 입체성에 대한 자각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현재 미인은(…) 어깨와 가슴은 탄력이 있어 보이고 유방은 퉁퉁 부은 듯 볼록하게 솟아오르고 허리는 그리 길지 않은데 궁둥이까지 곡선을 곱게 거느리어 통통한 엉덩이가 그리 크지도 또 적지도 않고 다리는 날씬하게 길어야”(‘몸맵시가 좋아야 옷맵시도 난다-나체미의 표준은 무엇?’, 『조선일보』, 1935.3.1.) 하는 ‘S라인’을 권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몸의 선을 아름답게 하는 ‘미용체조’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현대인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미용체조법’, 『삼천리』, 1935.10.).

특히 브래지어의 출현은 여성의 가슴이 곡선미를 띨 것을 요구했다. 브래지어가 보편화된 것은 1950년대 말 이후이지만 30년대 중반부터 여성 잡지나 백화점을 통해 일부 여성에게는 ‘유(乳)카바’ ‘유방뺀드’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우먼리브(여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브래지어 등을 불태우는 행사를 펼치기도 했을 만큼 브래지어는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또한 브래지어가 여성의 건강에 끼치는 위해성에 대한 연구 발표도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브래지어는 쉽게 ‘포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가부장적 시선에 대한 여성의 순종으로만 바라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20세기 초에 그랬듯) 옷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면적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라 몸을 보는 기준도 완전히 바뀌기 전까진 말이다. 브래지어에는 여성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욕망도 개입돼 있기 때문에 ‘브래지어를 벗어라’라는 구호가 오히려 여성들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도 있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