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녹음한 피아니스트 서혜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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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엿새-. 피아니스트 서혜경(50·사진)씨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전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까지 모두 다섯 작품을 녹음한 기간이다. 올 여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였다. 연주가 어려워 ‘괴물 협주곡’으로 불리는 2·3번으로 녹음을 시작해 한 곡당 40~50분 되는 대곡을 전부 끝냈다. 좋은 음악성과 함께 훌륭한 체력이 필요한 곡들이다. 이 협주곡들을 한꺼번에 녹음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어요. 러시아에 느긋하게 머물며 천천히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죠. 미국에 돌아가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체류비도 부담이 됐기 때문이에요. 세계의 유명한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지금껏 라흐마니노프 전곡 녹음에 도전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됐죠.”

서씨는 빡빡한 녹음 일정 때문에 중간에 어깨가 탈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왼쪽 어깨에 보호대를 달고 피아노 앞에 앉아 녹음을 계속했다. 지휘자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믹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번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이달 중 발매된다.

“몸과 마음이 급하고 지쳐있었어요. 하지만, 러시아 지휘자·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면서, 뒤로 갈수록 음악도 컨디션도 상승세를 탔죠.”

러시아 음악은 서씨가 젊어서부터 즐겨 연주했던 작품이다. 러시아 협주곡을 “35년 된 친구”라고 소개했다. 1980년 부조니 콩쿠르 입상 후 카네기홀 등을 무대로 활약했던 20대 시절 그는 광활한 대륙의 음악을 뜨겁게 소화해 많은 팬을 확보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같은 작품들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전성기 기교를 보여주기엔 좋은 음악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음악적 완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선언을 위해 러시아 음악을 선택했어요.”

서씨는 9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이반 피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이날 연주곡 또한 러시아의 정서가 가득하다. 차이콥스키의 대표적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시작하자마자 화려하게 쏟아지는 피아노 화음과, 낭만적인 오케스트라 멜로디로 유명한 작품이다.

“많이 연주되지 않는 차이콥스키의 2번 협주곡도 요즘 공부 중이에요. 로맨틱하고, 규모가 큰 음악이 제 스타일과 잘 맞죠.” 젊은 시절 자신을 유명하게 해줬던 러시아 협주곡들을 그가 요즘 새롭게 공부하고 완주하는 이유다.

서씨는 이번 앨범 녹음 직전 뉴욕에 들러 피셔가 지휘하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전부 연주하는 사이클이었어요. 링컨센터 에이버리피셔홀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고 힘찬 사운드가 인상적이었죠.”

이번 내한 공연장은 파워풀한 오케스트라와 활화산 같은 피아니스트가 격돌하는 현장이 될 것이라는 예고다. 02-2000-6309.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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