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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토크 7] 명품이 부리는 마법

중앙일보

입력

"전 물건은 꼭 명품 브랜드만 삽니다. 카드가 안 되면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라도 사죠. 그래야 잠이 옵니다. 잠을 못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아시죠. 불면증에 안 걸리기 위해서라고 하면 좀 심하다고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VENI, VIDI, GUCCI(왔노라, 보았노라, 구찌였노라)'
'Veni , Vidi , Vici' 줄리어스 시저가 남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이렇게 패러디한 말이 나돌기도 한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자신이 명품병에 빠졌다고 털어놓는 이들이 꽤 많다. 어떻게 고쳐달라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동병상련하는 동지(?)를 만나고 싶은 심리가 아닐까. 나만이 이런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위로받고 싶어서 말이다. 도박 중독증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 곁엔 쇼핑 중독증, 명품 중독증이란 용어도 있다. 이걸 병으로 불러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심리학자들은 흔히 증후군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걸치고, 무얼 찼는가로 평가되곤 한다. 일본의 심리학자 와다 히데키는 '여성스러움'을 요구하는 문화권에서 자란 여성일수록 명품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바깥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남자들에 비해 적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샤넬 백과 페라가모 구두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한국 땅에선 별로 맞지 않는다. 여자들의 활동성이 더욱 늘어날 수록 그들의 명품 구매욕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와다의 분석보다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소득의 향상과 더불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명품 수요도 따라 는다고 보는 것이 더 먹히는 설명일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설명도 전부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명품이 부리는 마법에 빠졌다, 이 한마디가 모든 걸 아우르는 말인지도 모른다. '미드' 섹스앤더시티 가운데 이런 장면이 있다. 집에 도둑이 들어 아주 위험한 상황인데도 사라는 제발 구두만은 가져가지 말라고 도둑에게 애원한다. 어떤 브랜드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돈은 가져가도 명품 구두는 안 된다? 돈도 많은데 그까지껏 또 사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모든 걸 줘도 명품 구두만은 안 된다는 심리를 마력이 아닌 다른 걸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술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도저히 그 비밀을 알아내기 어렵다. 도전의식이 발동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보지만 여전히 미궁이다. 마술의 힘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다. 명품도 그런 힘을 부린다. 브랜드만 아니면 그리 특별한 느낌이 안 들 때도 있다. 가죽 가방을 보자. 요즘엔 가죽이 해져 못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바느질 정도는 웬만한 회사도 빈틈없이 해낸다. 염색 기술도 널리 보편화됐다. 제조 그 자체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 무엇인가. 디자인이다. 컬러 감각과 기능성을 감안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그 무엇이 디자인의 영역이다.

명품 하면 럭셔리와 화려함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의외로 자신을 요란스레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것들도 많다. 품질 그 자체나 실용성이 강조된 것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멋이라면 은근하거나 질리지 않는 멋이다.
3초 백이라는 루이뷔통 스피디 백도 그런 경우다. 이 가방의 인기는 쓰기 편하고, 세련되고, 어느 옷과도 매치가 잘 되는 데 있다고 한다. 한데 따지고 보면 이런 가방이 어디 한둘일까. 그런데도 유독 스피디 백만 수십년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페라가모 구두도 비슷하다. 특히 남자 신발이야말로 시장에 나가보면 비슷한 디자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국산 브랜드이지만 가죽도 부드럽고 가볍고 편한 구두도 많다.

그런데도 명품은 여전히 그들만의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아이템 자체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든지, 소비자들이 스스로 최면을 걸어 그런 힘이 있다고 믿든지 둘 중 하나다. 명품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어떨까. 브랜드를 가리고 한 테스트에서도 페라가모 신발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 마술은 진짜라고 해야할 것 같다. 지금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힘'이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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