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배추 파동에도 등장한 ‘선동 합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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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는 논란이 불거질 경우 거짓과 괴담을 섞어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선동 합금술(合金術)’이다. 핵심 반(反)정부 인터넷·시민단체 운동가들과 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도하면 순진무구한 시민·학생이 뒤를 따르게 된다.

집단적 선동의 대표 사례는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이다. 이 파동 이후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선동 합금술’이 작용하고 있다. 천안함은 국군 46명을 숨지게 한 북한의 테러였는데도 선동가들은 각종 ‘사고 괴담’을 퍼뜨렸다. 급기야 제1 야당이 북한 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반대하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졌다. 사안의 성격과 규모는 다르지만 4대 강 사업에 대해서도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대운하용’이라는 선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배추 값 파동에서도 여지없이 선동의 유령이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4대 강 사업으로 하천부지의 채소 경작지가 줄어 채소값이 폭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4대 강 사업이 환경만 파괴하는 줄 알았더니 민생도 파괴한다”고 자극적으로 정부를 공격한다. 손학규 신임 대표까지 나서 “정부는 4대 강 사업 하천부지의 밭 농지가 전체의 1.4%밖에 안 돼 채소값 급등과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농산물은 생산량 10% 차이로 가격이 50~60%씩 변화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주장은 기초적인 산술과도 맞지 않다. 하천 경작지가 전체 경작지의 1.4%밖에 되지 않고 이 중에서도 배추 경작지는 일부에 불과할 터인데 어떻게 이것이 배추 값 폭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호텔 몇 개가 문을 닫았다고 전국의 호텔 숙박비가 폭등했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가깝게는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1억분의 1도 안 되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주장한 것과도 유사하다.

주지하다시피 배추 값 폭등은 올봄의 이상저온(異常低溫), 여름철 폭염과 폭우, 그리고 냉해(冷害) 같은 자연현상과 복잡한 유통구조가 결합한 결과다. 자연현상이야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소비생활 안정을 위해 수급대책에 좀 더 신속하고 치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야당은 이 점을 촉구하고 유통구조 개선책을 내놓는 게 옳은 처사요, 정도다. 배추 파동에 얽힌 인터넷의 황당한 괴담들을 잠재우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 또한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몫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괴담에 편승하니 전형적 정치선동이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배추 파동이 4대 강 탓이라니 소도 웃을 일 아닌가. 정부는 배추 값이 조만간 거꾸로 폭락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강원도 등지의 고랭지 작황이 나쁠 것을 예견한 남부 지역 채소 농가들이 넓은 지역에 배추를 심었기 때문이란다. 이럴 경우 야당은 어찌할 것인가.

우리 정치도 이젠 선동과 비(非)과학에서 돌아와 논리와 상식 앞에 설 때다. 변화를 천명한 손 대표가 강원도 배추밭에서 진짜 농심(農心)을 읽고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