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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대통령이 임관식에 서야 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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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학군장교(ROTC)로 임관하는 조카를 지난 설에 만났다. 조카는 대통령 일정 때문에 임관식이 좀 연기될 것 같다면서도 대통령이 임관식에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 ROTC 43기로 임관하게 될 조카뿐 아니라 ROTC 11기 출신인 그의 아버지도, ROTC 21기 출신인 그의 삼촌도 모두 어린 조카가 대통령이 임석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육군소위 계급장을 단다는 것을 대견해 하고 흐뭇해 했다. 그리고 모두 그 임관식에 가볼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카는 임관식에서 대통령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올해부터는 대통령이 육.해.공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 ROTC, 경찰대 등 여섯 곳의 임관식에 격년제로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지난해 탄핵 사태로 참석하지 못했던 공사.3사.경찰대 등 세 곳의 임관식에만 올해 참석한다. 육사와 해사, 그리고 조카와 같은 ROTC는 올핸 대통령 임석 없이 임관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조카에게 전화를 해봤다. 조카도 신문을 보고 대통령이 임관식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담담하다면서 차라리 임관식을 늦추지 말고 되도록 빨리 전방부대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엔 서운한 심정이 배어 있었다.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대한민국 국체수호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이 군과 경찰의 초급간부 임관식에 참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통령이 군 출신이든 민간인 출신이든 상관없다. 진보.보수 코드 따질 문제도 아니다. 군사정권의 유산이라며 개혁 운운할 성질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가보위의 최고선봉이어야 할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군과 경찰은 사기를 먹고 산다. 대통령이 임관식에 가는 것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에 사기를 먹이는 일이다. 대통령이 시혜 베풀듯 한 번 가줄까 말까 잴 성질의 일이 아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임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기를 먹고 사는 군과 경찰을 정신적으로 굶기는 일이다.

게다가 격년제는 또 뭔가. 국가보위와 군의 생명은 지속성이다. 불침번을 하루 걸러 할 수 없듯이 매년 새로 임관하는 국가의 간성을 격년마다 격려할 수는 없다.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바쁘고 번거로워도 매년 가야 한다.

물론 임관식이 한 시즌에 몰려 있어 일정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적인 조정의 문제다. 국가의 간성을 키우고 그들이 임관하는 자리에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하는 일은 국가대사이지 일개 시(時)테크의 대상이 아니다. 설사 대통령이 임관식에 참석하는 것이 경호상의 이유로 하객들에게 번거로움과 불편을 준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조급하거나 품격 없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참석으로 새로 임관하는 그들의 눈빛이 한층 더 빛날 것이란 사실이다.

대통령은 얼마 전 없는 시간을 내 눈꺼풀 수술을 했다. 눈꺼풀이 처져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군과 경찰의 초급간부는 국가를 보위하는 데 없어선 안 될 눈동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대통령이 눈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눈꺼풀 수술할 시간을 냈듯이 국가보위의 눈동자인 젊은 간성들을 격려하기 위해 임관식에 참석할 시간을 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가뜩이나 북핵 위기로 불안한 이때 국민 전체를 향해 강력한 국가보위 의지를 천명할 기회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젊은 그들은 지난 4년을 절제와 규율 속에서 지내왔다. 대통령이 임관식에 서서 그들 모두에게, 아니 대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진심 어린 악수를 해주는 것으로 그들은 모든 어려웠던 과정을 잊고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이라크로 날아가 자이툰 부대원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격려했던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 군과 경찰의 초급간부 임관식에 전격적으로 참석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게 대통령의 할 일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