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름, 이산에서 이성으로 후손 번성한 서성 이름 본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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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선시대 대표적 ‘학자 군주’ 정조(正祖·재위 1776~1800·어진)가 1796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산’에서 ‘성’으로 바꿔 불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목적은 흥미롭게도 자손을 많이 두기 위해서였다는 것. 정조의 성명은 ‘李祘’이라 쓴다. 이를 본래 ‘이산’으로 발음하다가 1796년 8월 11일 『규장전운(奎章全韻·한자 발음사전)』 발간을 계기로 ‘이성’으로 바꿨다고 한다. 안대회(성균관대·한문학) 교수는 지난 1일 학술연구모임 ‘문헌과 해석’에서 발표한 논문 ‘정조 이름의 개칭과 그 과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정조 이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처음은 아니다. 2008년 한문 번역자 남현희씨가 처음 꺼내 들었다. 당시 남씨는 정조의 명령으로 편찬된 『규장전운』에 ‘祘’자의 발음이 ‘셩(성)’으로 되어있는 점을 근거로 “정조의 이름 ‘산’은 ‘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번 안 교수의 논문은 2년 전 남씨의 주장을 일부 반박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한 것이다. 안 교수는 ‘비연외초(斐然外抄)’라는 글을 새롭게 발굴했다. ‘비연외초’는 19세기 저명한 중인 문사인 장지완(1806~?)의 글이다. 장지완은 “정조의 이름은 본래 ‘산(算)’으로 읽었지만 『규장전운』 발간을 계기로 ‘성’으로 바로잡았다”며 “계란(界欄·인쇄의 판식)이 벌써 정해졌기 때문에 ‘성(渻)’자를 삭제하고 임금 이름을 채워 넣었다. 왜냐하면 ‘성’(渻)자는 서약봉(徐藥峯·1558~1631)의 이름으로 자손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약봉, 즉 서성은 조선후기 명문가 대구 서씨의 중흥조다. 후손이 번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 교수에 따르면, 『규장전운』이 인쇄되기 직전 정조는 ‘성(渻)’자를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인 ‘祘’를 집어넣었고, 이후 임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성(渻)’자는 다른 문헌에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정조는 자식이 귀했다. 왕비 청풍 김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의빈 성씨 소생인 문효세자는 요절했다. 늦게 수빈 박씨에게서 순조를 낳았지만, 『규장전운』 완성 당시 일곱 살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 순조를 지나 손자 헌종 대에서 정조의 대는 끊겼다. 이름까지 바꿔 후손이 많기를 바란 정조의 꿈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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