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정봉 기자
‘유럽형’ 한식 세계화, 고메 2010 가보니
셰프들은 유럽 스타일의 코스 요리에 한국 식자재를 썼다. 한국의 채소·과일과 고추장 등을 유럽인의 입맛으로 재해석한 음식들이다. 최근 유럽에선 짠맛·신맛·단맛·쓴맛·감칠맛 등 5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는 오감만족 요리가 대세라는 것. 이런 다섯 가지 맛 속에 한국의 재료들을 섞어 넣는 기법으로 개발된 것. 코스별 요리는 다음과 같다.
1 에피타이저 I ‘푸아그라를 뿌린 배’(상훈 드장브르) 꿀에 절인 한국의 배와 캐러멜 소스를 입힌 호두 위로 얼린 푸아그라를 갈아서 뿌렸다. 푸아그라의 진한 풍미와 배의 시원한 단맛이 어울려 혀끝을 휘감았다.
3 에피타이저 III ‘오징어 구이와 카레향 애호박 샬럿’(페르난도 델 세로) 한국의 애호박이 카레를 만났다. 아삭한 애호박에 카레의 짙은 향을 입혀 새로운 느낌의 요리를 만들었다. 그에게 ‘매움’은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맛이 아니라 톡 쏘는 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4 메인 I ‘김치와 고추장 소스, 피망 종이와 깻잎을 곁들인 도미’(상훈 드장브르) 가장 한식다운 요리였다. 고추장 소스를 접시에 뿌렸고, 김치를 잘게 썰어 얹은 도미를 가운데 올렸다. 그가 쓴 고추장 소스는 두 종류. 하나는 짠맛이 강조돼 끝맛으로 매콤함이 희미하게 남았다. 다른 하나는 초고추장이었다. 요즘 유럽에서는 신맛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미셸 트와그로는 “된장보다 초고추장이 유럽에 통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했다.
5 메인 II ‘당근 퓌레와 가지 피클을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미셸 트와그로) 안동 한우로 만든 안심스테이크에 단맛과 신맛이 조화된 가지 피클과 당근 퓌레를 곁들였다. 또 옆에는 쓴맛이 나는 허브를 뿌렸다. 맛이 튀지 않아 밋밋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트와그로는 “맛의 조화를 위해서는 신맛과 쓴맛까지 아울러야 한다”고 했다.
7 디저트 II ‘테르 드 에르메스(헤르메스의 땅)’(조르디 로카) 놀라움 그 자체였다. 초콜릿처럼 보이는 디저트를 한 숟갈 떠먹자 흙의 향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실제로 흙을 썼다. 깨끗한 흙을 물에 40도 정도의 저온으로 끓인 뒤 주문 제작한 기계에 넣어 향을 뽑아 소스로 쓴다고 했다. 은은한 향이 디저트의 단맛과 어울려 숲길을 밟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 안에 깻잎을 잘게 부숴 넣었는데 묘하게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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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요리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기대에 비해 맛은 잘 모르겠다”는 게 중평이었다. 셰프들의 요리는 유럽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어서 한국인의 입맛과는 거리가 있는 듯했다. 고소하고 매운맛을 좋아하고, 자극적이고 진한 풍미를 좋아하는 우리네 입맛에는 전체적으로 밋밋했다. 6명의 셰프들은 한결같이 “시각·질감까지 만족시키고, 신맛·쓴맛까지 아우르는 오감과 오미를 만족시키는 요리를 만든다”고 했다. ‘맛있다’는 느낌은 개인의 취향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좋은 ‘맛’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다 흔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유럽인에게 우리 음식이 통하려면 어때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