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흉흉한 채소값 민심 대책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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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채소값 민심이 흉흉하다. 상추 한 봉지에 4000원, 배추 한 통이 1만4000원이 넘는다. 식당들은 “고기로 상추를 싸 먹어야 할 판”이라 한숨 쉬고, 김장철을 앞둔 가정주부들은 ‘금(金)추’ 파동에 시름이 깊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식단에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했다가 “양배추도 한 통에 1만원이 넘는다”는 역풍을 맞았다. 그만큼 채소는 국민정서에도 예민하다. 채소 파동은 경제 전반까지 교란시키는 위험 수준이다. 9월 신선식품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45.5%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6%를 기록했다. 이러다간 채소값 잡으려 기준금리까지 올려야 할 판이다.

이번 파동은 올봄 이상저온과 여름철의 폭우, 그리고 태풍까지 겹친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성격이 짙다. 이상기후에 버텨낼 장사는 없다. 여기에다 일단 수급균형이 무너지면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생필품의 속성이다. 상추값이 지난해보다 233%, 배추가 119%라는 쇼크 수준의 폭등세를 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채소 시장에는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유통이다. 지금도 강원도 고랭지에선 사전 계약 재배로 배추가 포기당 1000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결국 미리 밭떼기를 한 중간유통업자들만 수급 불균형을 틈타 폭리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중국산 배추를 무관세로 긴급 수입하면서 일단 큰 고비는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파동을 계기로 정부는 농업정책 전반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쌀과 같은 곡물에 집중돼 있는 우리 농업정책은 현실과 괴리(乖離)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웰빙 바람을 타고 채소 소비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이에 비해 채소류는 상하기도 쉽고 부피가 커서 수입조차 용이하지 않다. 앞으로 곡물뿐 아니라 채소류 같은 밭작물에도 균형 있는 투자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왜곡된 유통 구조는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채소류의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제2의 채소류 파동을 예방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만 농민이 살고 소비자도 안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