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밥이 동 난 서울의 중국 국경절 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일 입니다.
보통 이 날을 며칠 앞두고 주한 중국대사관은 국경절 행사를
개최합니다.
올해의 경우엔 9월 28일을 잡았습니다.
저녁 6시 반 행사장인 서울 롯데 호텔 2층으로 향했습니다.

장씬썬 대사 내외, 싱하이밍 공사, 차이융 무관 등과 의례적 악수를 하고,
이어 행사에 참석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 대사 스피치, 우리 외교부 차관보의 스피치 듣고,
중국대사관에서 준비한 공연 감상하며 다른 곳으로 가실 분은 가고,
아니면 남아서 중국대사관에서 준비한 부페를 먹거나 합니다.

저야 매년 참석하는 행사이긴 한데,
올해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 못 만난 분들 만나 수다 좀 떨고 요기를 하고 가려고 하는 데
글쎄, 부페 요리를 담을 접시가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호텔 직원이 부랴부랴 가져온 접시를 집고
한 상 가득하리라 생각하고 간 테이블마다 음식은 텅 비었습니다.

참 황당하더군요.
잠시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만 이내 상황 파악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테이블마다 차려놓은 음식이 동이 난 것입니다.

손님을 초대한 중국 대사관 직원들은 웃는 낯으로
손님들과 담소하느라 바쁜 모습이었지만 그들 또한 모두 굶었을 것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중국대사관 측에서는 올해 국경절이 무슨 5주년이나 10주년으로
꺾어지는 해가 아닌 건국 61주년이어서
예년의 경우에 맞춰 약 300명 가량의 손님을 예상하고
식사도 그렇게 준비한 모양입니다.

한데 첫째 이유는
폭발적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을 실감시키기라도 하듯
400~500명 가량의 손님이 몰리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행사장 앞을 가득 메운 축하 화환도 여느 해보다 많아 보였구요.
한국의 유명 인사는 차치하고 스티븐슨 미 대사 또한 모습을 드러냈더군요.

둘째는 예년의 경우 그저 행사 참석이라는 눈도장 찍고
부페엔 손도 안대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올해의 경우엔 대사와 우리 차관보의 스피치도 끝나기 전에
음식에 손 대기 시작하는 손님들이 많더군요.
참 선견지명 있는 분들이긴 했지만 어쩐지 많이 씁쓸했습니다.
여기서 요기라도 하고 가자는 게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내년 중국 국경절 행사의 풍경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