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장례문화 '산골(散骨)'이 해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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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1세기에 들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인구 고령화라 할 수 있다. 인구고령화는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율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인구고령화는 출산을 덜 하여 저연령층 인구가 줄기 때문에 발생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평균수명이 길어져 노인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도 발생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보건의료 기술이 계속 발달한 덕분에 많은 질병이 미연에 예방되거나 치료될 수 있어 인간 대부분은 일정한 연령에 이른 후 사망한다고 한다. 노인이 증가한다는 것은 곧 사망자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연간 사망자수는 약 25만명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우리나라가 고령사회가 되는 2025년께는 연 45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38년에는 연 60만명이 사망할 것이다.

사망 증가로 묘지 등 장례시설에 대한 수요도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좁은 국토에서 묘지 등 죽은 자를 위한 장례시설을 무한정 공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설사 공급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산 자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장례문화를 재조명하여, 미래에 국토활용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 마련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토 활용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화장이 권장되어 왔으며, 실제 화장률이 급격히 상승해 2003년에 46.2%로 나타나고 있다. 화장률 상승은 도시화, 핵가족 확대, 묘지 부지 가격 상승, 묘지 관리 어려움 등 현대사회의 변용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분묘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관리 어려움이 최소화될 수 있는 납골시설의 등장도 화장률 상승에 기여하였을 것이다. 화장 후 유골을 안장하는 수단으로 납골시설(납골당.납골묘.납골탑)이 제도적으로 도입된 것은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때다. 그후 불과 수년 내에 많은 납골시설이 설치되었다.

묘지와 납골시설의 공통 특징은 누적된다는 점이다. 이들 시설의 존속기간은 산자가 토지를 점유하는 기간, 즉 인간수명보다 훨씬 길다. 그래도 묘지는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장 60년까지만 사용 가능하며, 관리가 되지 않을 경우 자연으로 환원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납골시설은 설치기간에 제한이 없다. 게다가 납골묘와 납골탑은 지나치게 많은 석물이 설치됨으로써 거의 반영구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납골시설이 분묘와 같이 무연화해 방치될 경우, 자연환경이나 주민생활에 미치는 폐해는 전통적 묘지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화장률 증가에만 급급해 납골시설 도입 때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탓이다.

최근 민관 합동의 장사제도개선위원회는 현 장례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건의하고 있다. 그중 사회 전체에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장법으로 산골(散骨.화장 유골을 뿌리거나 시설물 없이 매장하는 장법)의 제도적 도입이 적극 권고되고 있다. 산골에 대한 최소 기준도 권장되고 있다. 산골이 주민생활이나 자연환경 및 보건상 위해가 되지 않은 장소에 한정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산골 방법도 뿌리는 방법 외에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림이나(삼림장), 장미동산 등에 매장하는 방법이 권장되는 등 유족의 선택폭을 넓히도록 하고 있다.

옛말에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요즈음 사람은 죽어 납골시설에 재를 남기고 있다. 우리 모두 평생 신세를 졌고, 또한 우리 후손을 맡길 수 있는 이 땅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많지 않다. 그중 하나는 국토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장례문화에 동조하고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