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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후계자 선정 경영권 불확실성 없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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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27면

골드먼삭스 전 CEO 로버트 루빈

올 7월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상장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경영권 승계계획(Succession Planning)에 대해 벌인 설문조사 결과였다. 세계적인 기업 CEO 325명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66.5%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승계계획과 절차를 마련해 놓았다’고 대답했다. 미 월가의 상장 금융회사들 가운데 승계 계획을 마련해놓은 비율은 더 높았다. 조사에 응한 CEO 81%가 승계계획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국내 금융그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국 금융그룹들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차기 CEO를 간택한다. 그렇지 않으면 1인 지배체제가 이어지면서 피로 현상을 보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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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금융그룹들이 말하는 승계 계획은 종이쪽지가 아니다. 그들은 후계자 후보군을 미리 선정한다. 그들에게 회사 내 기획과 재무 등 중요 보직을 맡겨 회사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길러준다. 주기적으로 능력과 적성을 평가해 최종 단계에서는 1~2명만 남긴다. 이렇게 훈련된 후계자들 덕분에 기존 CEO가 돌발적인 사건이나 공직 진출 등으로 회사를 떠나더라도 경영 공백이 최소화된다.

이런 승계 프로그램을 가장 잘 활용한 곳이 바로 골드먼삭스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이 회사 역사를 쓴 찰스 엘리스는 “골드먼삭스는 오너 가문 출신들이 2선으로 물러난 이후 경영권을 둘러싼 내분이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CEO들이 자신의 영향력 유지보다 회사의 운명을 더 생각해 승계작업을 미리 벌였다”고 말했다.

골드먼삭스 승계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로버트 루빈(72)과 스티븐 프리드먼(73) 발탁이었다. 두 사람은 골드먼삭스가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1990~92년에 공동 CEO였다. 루빈은 트레이딩(자기자본 투자) 부문을, 프리드먼은 투자은행 부문을 책임졌다. 두 사람은 정반대 성격이었지만 환상적인 짝꿍을 이뤘다. 당시 골드먼삭스 사람들은 “차가운 머리(루빈)와 따뜻한 가슴(프리드먼)이 조화를 이뤄 회사를 이끌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10년 동안 경영수업은 기본
루빈과 프리드먼의 조화는 오랜 승계 작업 덕분이었다. 둘은 10년 넘게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루빈과 프리드먼은 80년 나란히 경영위원회 멤버로 발탁됐다. 골드먼삭스가 파트너십 체제였던 당시 경영위원회는 5~9명으로 구성됐다. CEO가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크고 작은 사안을 모두 감독하고 결정했다.

두 사람을 후계자로 발탁한 사람은 ‘두 명의 존(John)’이라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바로 존 와인버그와 존 와이트헤드였다. 두 명은 70년대 중반 공동 CEO가 됐다. 와인버그는 골드먼삭스의 주춧돌을 놓은 시드니 와인버그의 아들이다. 와이트헤드는 자신의 능력으로 승진을 거듭한 인물이었다.

두 명의 존은 각각 투자은행(와인버그)과 트레이딩(와이트헤드)을 나눠 이끌었다. 80년은 두 사람이 공동 CEO가 된 지 거의 10년째 되는 해였다. 그들은 내분을 피하고 경영권을 넘겨줘야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들처럼 공동 CEO 체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규모도 커졌고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투자은행과 트레이딩 부문을 한 사람이 이끌었다가는 분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두 명의 존은 그동안 여러 보직을 맡기며 테스트한 후보군 중에서 루빈과 프리드먼을 후계자로 내정했다. 루빈과 프리드먼을 경영위원으로 발탁해 회사 사람들에게 차기 대표임을 분명히 했다. 또 루빈과 프리드먼이 회사의 전략적인 사안을 직접 다루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 이런 훈련 시간이 10년 정도 이어졌다.

지도자 수업을 받는 동안 루빈은 첨단 금융이론을 받아들여 골드먼삭스의 트레이딩 기법을 선진화했다. 50년대 개발돼 상아탑 속에서 잠자고 있던 포트폴리오 투자이론을 월가 투자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적용해 회사의 수익을 늘린 것이다. 프리드먼은 최고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80년대 들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는 틈을 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과 채권을 인수했다.

골드먼삭스는 설립 초기부터 후계자감을 물색해 훈련시켰다. 골드먼은 독일계 유대계인 골드먼과 삭스 가문이 혼인을 계기로 동업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오너 가문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대공황 사이에 차례차례 2선으로 물러났다. 대신 심부름꾼으로 입사한 시드니 와인버그를 대학교육과 경영수업까지 시켜 CEO로 선임했다.

승계 계획은 권력투쟁 억제해
시드니 와인버그는 오너 가문이 2선으로 퇴진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의 장악력이 막강한 50년대 후반 거스 레비를 발탁해 잠재 후계자로 훈련시켰다. 그 훈련 기간이 10여 년에 달했다.

시드니는 60년대 중반 레비에게 일상적인 경영을 맡겼다. 대신 경영위원회를 설치해 그의 독단적인 결정을 견제하도록 했다. 또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사실상 수렴청정이었다.

시드니는 69년 숨을 거뒀다. 골드먼삭스는 권력투쟁을 겪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던 거스 레비가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행사했다. 이런 골드먼삭스의 전통은 현재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까지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경영진 사이의 갈등도 있었고 심지어 쿠데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 기간 경영훈련을 받으며 사내 구성원들과 교감한 후계자들이 경영권을 곧바로 장악했다. 경영권 불확실성을 미리 없앤 덕분에 회사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권력투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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