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직업교육 경시해선 ‘공정 사회’ 힘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새로운 국정방향으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는 당연한 국정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함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한 자는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사회가 고착돼왔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게 공평한 교육기회 부여’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전문대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지방대학 학생들의 취업 문제 해결, 사교육비 문제 해결 등 교육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가 우리나라 산업인력 양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학벌주의로 인해 일반계 고교에 진학해야만 진학과 취업·임금 등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는 데 유리하며 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구조가 고착돼 있다. 고교 진학자 중에서 전문계 진학자는 2000년도 37.3%에서 2009년도 24.3%로 감소했다. 전문계고 졸업자의 취업률은 2000년도 51.4%에서 2009년도 16.7%로 줄었다. 직업교육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691개 전문계고를 2015년까지 400개로 줄이고, 그중에서 50개교를 마이스터고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직업교육 붕괴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선진국은 중등단계 직업교육기관 학생 수가 50% 이상이다. 2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중등 단계 직업교육기관 학생 수는 21위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하면 부모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 학생들은 93.1%가, 부모 학력이 중학교 졸업 이하인 학생들은 47.9%가 일반계고에 진학했다. 또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자녀는 대부분 인문계고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모의 학력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은 대부분 전문계고·전문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교 졸업자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전문대 졸업자는 103.6, 4년제 일반대학 졸업자는 157.7로 나타났다. 결국 학력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벌주의는 단기간에 척결되지 않을 것이다. 고교 진학 단계부터 직업교육기관인 전문계고를 선택하더라도 학벌로 인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직업교육 분야로의 계속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 고등 단계 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의 수업 연한을 다양화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직업교육 분야의 학사·석사·박사 과정도 설치하는 것이 무분별한 고학력 선호 풍조, 사교육비 문제, 인력 수요와 인력 양성의 불일치, 고학력 청년실업률 증가, 사회·경제적 계층 간 갈등 심화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학벌주의 사회를 능력 위주 사회로 변화시켜 공정한 사회를 구현함으로써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학벌주의로 인한 직업교육 경시 풍조를 방치할 여유가 없다. 사회구조 혁신 차원에서 과감히 그리고 시급히 직업교육 활성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양한주 한국전문대학 교육연구학회 회장  동양미래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