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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 | 영차이나가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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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그들이 온다. 인터넷을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고, 29위안짜리 티셔츠를 사랑한다. 당당하고 활기 찬 ‘샤오황디(小皇帝)’다.
1980년 이후에 탄생한 ‘바링허우(80後)’다.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탄생한 이들은 중국의 기성세대와는 판이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 떠오르는 강국, 신(新)중국은 이들을 이해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새 중국의 주역, 바링허우의 모든 것을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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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작가인 한한(韓寒)과 인기 여배우 왕뤄단(王洛丹)이 등장하는 인터넷 패션 브랜드 VANCL의 광고. “나는 나다”라고 외치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광고가 하나 있다. 가로 3m, 세로 2m 정도 되는 대형 광고판에 흰 티셔츠를 입은 젊은 작가 한한(韓寒·1982년 상하이 출생)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시얼마쯤 떨어진 곳에 푸른 니트에 흰 치마를 입은 왕뤄단(王洛丹·1984년 네이멍구 출생)이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의 VANCL 광고다.

“나는 나다” 외치는 젊은 新중국 #인터넷·Zara패션·드라마 <분투> #개성·유행·브랜드 민감… 아파트·車·별장 있는 중산층 외동자녀

VANCL은 영 차이니즈, 그러니까 중국어로 ‘바링허우(80後)’라 불리는 1980년 이후 출생세대를 주 고객으로 온라인 매장만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다. VANCL은 중국어로‘판커(凡客)’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손님’이라는 뜻 외에 ‘브어커(博客·blog)’를 연상시키는 브랜드 이름이기도하다.
바링허우가 가장 많은 시간과 돈과 취미를 쏟아붓는 곳이 인터넷인 만큼 인터넷쇼핑사업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성황인 분야 중 하나다. 2007년 10월 창립된 VANCL은 출발 당시부터 네티즌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VANCL의 창립자인 천녠(陳年·1969년 산시성 출생)과 레이쥔(雷軍·1969년후베이성 출생)은 이미 바링허우의 우상이다. 천녠은 대학졸업 후 한 출판사 편집부장으로 출발해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중국의 ‘YES24’에 해당하는 JOYO(卓越網)를 창립해 정상 궤도에 진입한 후 4년 만에 아마존에 거액으로 매각한 청년 기업가다.

레이쥔 역시 대학 졸업 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출발해 불과 8년 만인 1998년 30세에 대기업진산치예(金山企業)의 CEO에 오른 청년 기업가다.
두 명의 우상이 손을 잡고 새로운 브랜드를 창업했으니 뭔가 일을 저질러도 큰일을 저지르겠구나 하는 기대가 그들에게 있었다. 역시 VANCL은 불과 2년여 만에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브랜드 신임도가 수천 배 증가한 기업, 최고의 성장 가능성을 지닌 신흥기업으로 성장했다.
온라인사업의 고수들이 바링허우를 상대로 마케팅을 할때 바링허우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우상을 모델로 선발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VANCL이 선택한 한한과 왕뤄단은 바링허우의 특징을 한몸에 안은 걸어다니는 바링허우의 아이콘이다.

한한은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으로 낙제를 밥 먹듯 하던 열등생으로 18세에 소설 응모에 1등으로 당선되어 19세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28세인 현재 한한은 판매부수 200만 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출판사 편집주간, 자동차 랠리 선수이자 2010년 4월 <타임(time)>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된 전형적인 바링허우다. 중국에서 바링허우의 선두주자이자, 대표주자라고 하면 단연 한한을 지목한다.

“인터넷을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고
늦잠을 사랑하고
늦은 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사랑하고
자동차 경주를 사랑하고 29위안짜리 티셔츠를 사랑한다.
나는 무슨 선구자도 아니고 누구의 대변인도 아니다.
나는 나다.
나는 오직 나 자신을 대표한다.
나도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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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가장 유명한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한복판에 자리 잡은 패션 브랜드 ‘ZARA’매장
밤늦도록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한한이 등장하는 VANCL의 광고문안이다. “나는 나다” 라는 말은 한한이 인터뷰 때마다 외치는 자기 표현이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고 자유분방하며 당당한 한한의 이미지와 메시지는 영 차이니즈의 한 축을 대변한다. 한한은 온라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도 선정돼 그가 qq(중국판 트위터)상에서 “웨이(여보세요)”라고 한마디 하면 수 초 만에 수만 명이 호응하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현재 중국에는 ‘한한현상(韓寒現象)’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한한이 고교 졸업 직후 소설로 문명을 날리자 사회 일각에서는 성적이 모자라도 그의 대학 입학을 허용해 더 공부하게 하자는 여론과 너무 공부를 못하니 대학에 입학해도 따라 가지 못한다는 반대 여론이 팽팽히 맞서 갑론을박한 현상에서 생겨난 말이다. 본인이 대학 입학을 원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사회적 여론이다. 이에 대해 한한은 “유명세란 머리 뒤에 붙은 꽁지머리와 같아서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남에게는 금방 눈에 띈다”고 일축해 ‘한한어록’으로 또다시 유행했다.

‘에지’ 있는 그, ‘ZARA판’
왕뤄단은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하고 근래에 출연한 드라마 <분투>가 히트하면서 바링허우를 대표하는 연기자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여배우다. <분투>는 대도시 청년들의 우정·사랑·비즈니스를 주제로 한 드라마인데, 왕뤄단이 연기한 여주인공 ‘미라이’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애인으로 자리 잡았다. 미라이가 대중의 공명을 이끌어낸 이유를 찾아보자.

미라이는 ‘푸얼다이(富二代)’, 즉 재벌 2세다. 청순하지만 가련하지 않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주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선량함과 사랑에 대한 집착을 연기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랑한 루타오를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기지만 두 사람을 모두 용서하고 루타오에게 변치 않는 애정을 보이며 어려울 때마다 도와준다. 미라이는 극중에서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나는 네가 유명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원치 않아. 돈이 적어도 여유시간이 많은 일을 하도록 할 거야. 매일 나와 같이 영화 보고 클럽에 가고 전시회 보고……. 학교에 다닐 때처럼 죽 생활하는 거야. 할 수 있는 데까지 이렇게 살아보는 거야……. 매월 버는 돈은 마지막 1위안까지 모두 써 버리자. 그러고는 부모님한테 가서 얻어먹지 뭐. 사업을 안 하면 해결할 일도 없고 보수도 없고 다른 사람도 없고 오직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살면 되잖아? ”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학창 시절의 삶을 영속하고자 하는 ‘피터팬신드롬’이다.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소득보다 소비수준이 높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때로는 사랑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유형의 바링허우를 중국에서 적지 않게 만난다.
“나는 나다, 나는 특별한 게 없지만 매우 특별하다”고 외치는 왕뤄단은 실제로 배우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대담하고, 당당하고, 개인주의적이고, 도시적이고, 세련되고,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동질감을 획득하는 영 차이니즈. 확실히 그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가치관과 문화 취향, 소비 심리를 보여준다.

올 여름 베이징·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의 ‘핫 트렌드’는 ‘ZARA’다. ZARA는 스페인의 명품 브랜드 ‘Inditex’ 산하의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인데 중국 전역에서 바링허우가 가장 즐겨 입는 브랜드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개성을 숭상하는 오늘날 유행에 민감한 바링허우·주링허우(90後) 세대는 패션의 낡은 공식을 깨뜨렸다. 이들 세대의 패션은 ‘신선함’ ‘개성’ ‘유행’을 특징으로 하는데, 오늘날 중국에서 ZARA는 불과 몇 년 만에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젊은 세대의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신호가 되어버렸다.”
‘ZARA 패션 : 올 여름 유행의 선도자’라는 제목의 2010년 7월 3일자 <성이서(生意社)> 통신문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기성세대는 ‘품위’가 있다고 했지만 요즘은 한 글자로 ‘판(范·에지)’이 있다고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인 ZARA가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에지 있는 사람을 ‘ZARA판’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 브랜드의 최대 특징은 디자인이 다양하고 주기가 짧고 ‘코디’하기에 좋으며, 더욱이 가격마저 적당해 수백 위안으로도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청완바오(羊城晩報)> 2010년 7월 4일자-

베이징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왕푸징(王府井) 거리는 대형국제도시의 면모를 드러내는 쇼핑가로 밤낮과 주중·주말 구분 없이 세계 각국, 중국 각지의 사람들로 붐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베이징판디엔(北京飯店)을 끼고 길을 건너면 신둥팡(新東方)이라는 대형 쇼핑센터가 있고 그로부터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왕푸징 한복판에 대형ZARA 매장이 있다.
디자이너의 옷을 합리적 가격에 입는다는 이곳은 대략 300~400위안(6만~8만원)에서 1000위안(약 20만원) 미만의 의류와 신발을 판매한다. 그런데 이 매장에 중국인 쇼핑객이 얼마나 많은지 계산하려면 지갑을 들고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붐빈다. 세일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물건을 고른다. 마치공짜 물건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것 같은 이런 풍경을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본 적이 있다. 지난 봄 중국인 친구를따라 타운하우스를 분양하는 베이징 교외로 갔는데, 평균 150만 위안(약 3억원)이나 하는 그곳에 구매상담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차례 왕푸징 거리를 방문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지하철을 타고 왕푸징역에서 내려 톈안먼(天安門)광장까지 걸으면서 중국의 미래를 맘껏 상상하고 호흡했다. 결과적으로 ZARA 매장에도 그만큼 구경갔다. 그때마다 북새통이었다.


중산층의 3대 요건, 아파트·자가용·별장
중국 진출에 대성공한 ZARA는 한국 기업인이라면 분명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문화연구자의 각도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관건은 ‘바링허우의 가치관과 소비심리를 파악하고 있는가’다. ZARA가 바링허우·주링허우가 가장 즐겨 입는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ZARA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VANCL이 바링허우·주링허우를 대상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2~3년 사이에 중국 최고 신진기업으로 자리매김할 때 기업의 마케팅 관건은 영 차이니즈였다.

베이징대의 D(59·허베이성 출신) 교수는 40년 된 낡은 자전거를 친구처럼 데리고 다닌다. 1960년대 말 구입한 그 자전거는 톈진(天津)에서 생산된 철로 만들었는데, 뼈대가 얼마나 튼튼한지 요즘 나오는 자전거는 비교할 것이 못 된다며 자전거 수리공들도 감탄한다고 자랑한다.
오래된 낡은 자전거, 출퇴근을 함께하며 평생을 같이해온 동반자,정이 듬뿍 들어 친구처럼 되어버린 자전거.

그런 D 교수가 1년 전 외동아들(30·베이징 출신)을 위해 베이징 시내에 새 아파트를 장만했다. 물론 아들 명의의 아파트다. 100만 위안(약 2억원)은 현금으로 모았고 50만위안은 융자를 받았는데 구입하자마자 이미 50만 위안이 올랐다고 한다. 아파트를 팔라는 부동산업자의 전화가 매일 끊이지 않는단다. 공무원직을 가졌고, 본인 명의의 아파트가 있고, 후일 부모의 집을 상속으로 받을 D 교수의 아들, 그가 바링허우다.중앙정부의 J(55·헤이룽장성 출신) 처장은 외동딸(26·베이징 출신)이 하나 있다. 베이징에 아파트 두 채와 지방에또 두 채 그리고 자가용 2대와 주식도 얼마간 보유한 그는 오직 근심걱정과 기쁨의 원천이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소유할 수 있었던 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왕따 공주가 될까 봐 해외 연수도 여러 차례, 인맥을 활용한 대기업 실습사원 만들기,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관리하며 딸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이미 자기 명의의 아파트가 여러 채 있고 아이폰에, 자가용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음에도 오직 사랑을 소유하지 못해 상처받는 그 외동딸이 바링허우다.

1990년대 유학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L(48·허베이성 출신)은 당시에도 학생 신분으로 사업을 한다며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100위안짜리 현금다발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자랑하더니 인터넷 쇼핑몰 창업을 거쳐 지금은 베이징 근교에서 골프장과 호텔을 운영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에게는 외동아들(12·베이징 출생)이 있다. 아내와 이혼한 그는 어머니·아들과 함께 사는데, 아들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줄 용의가 있다. 지난해에는 2주일에 4만 위안(약800만원)하는 미국 어학여수를 다녀온 그 아들이 현재 연 3만 달러의 학비를 내는 베이징국제학교에 다닌다. 그 외동아들이 주링허우다.

베이징에는 십수 년간 알고 지내는 라오펑유(老朋友·오래된 친구)가 비교적 많고, 그 연배의 층차도 넓은 편이다.
동년배에서 십수 년 위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번에 베이징생활을 통해 라오펑유들과 자주 접하면서 그들의 경제력이 예전에 비해 월등히 풍요로워졌음을 실감했다. 중국에서 중산층의 의미는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하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약 1억 명으로 추산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수년간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 베이징의 중산층은 아파트와 자가용 외에 별장 혹은 제2, 제3의 아파트를 소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의 특징은 별장 혹은 제2, 제3의 아파트를 타인에게 임대하지 않고 비워 둔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시내의 낡은 아파트에 거주하다 주말에는 근교의 고급 아파트에서 지내고, 휴가는 별장에서 보내는 형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 라오펑유, 즉 기성세대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경제력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윤택해졌음에도 주택을 제외하고는 옷차림이나 소비 패턴이 여전히 검소하고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크게 바뀐 것은 그들의 외동자녀, 즉 바링허우·주링허우다. 부모들은 자신이 아니라 자녀를 위해 명품을 구입하고, 한 가정의 소비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외동자녀다. 우리 기업은 그들의 취향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점검해보지않을 수 없다.
바링허우는 숫자적 개념으로는 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 주링허우는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령으로 환산하면 바링허우는 현재 21~31세로 <중국통계연감>에 의하면 약 2억4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주링허우도 이에 상당한다. 광의의 의미에서 바링허우는 주링허우를 포함한다.

바링허우의 가치관; 자유·사랑·자아성취
바링허우는 문화적 개념으로 ‘도시·젊음·인터넷’을 특징으로 하는 전문대 학력 이상으로 도시지역에 기반을 둔 청년세대가 핵심이다. 1980년을 기점으로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덩샤오핑(鄧小平)의 ‘한가구 한 자녀’정책이 추진되기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로 극명하게 갈리며, 가치관·행동양식·소비취향 등 여러 방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 중국의 사회학자들은 바링허우를 중국 사회의 가치관과 행위규범의 전환기 세대라고 지적한다.
바링허우는 대부분 외동자녀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부모의 특별한 관심 속에 성장했고, 부모세대가 문화대혁명을 겪은 데 비해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자란 세대라고 하여 ‘샤오황디(小皇帝)’나 ‘샤오궁주(小公主)’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기성세대는 대부분 이들이 나약하고 자립 능력이 떨어지고 책임감도 약하고 신념도 없고 이기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한, ‘눈은 높고 능력은 떨어지는(眼高手低)’ 세대라 하여 중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활동, 쓰촨(四川)대지진 등 사회 각종 재난지원활동, 티베트 독립 반대활동 등에서 집단적 애국심과 희생정신, 봉사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회의 핵심역량으로 부상했다. 그 이전의 이기주의, 소황제주의의 우려에서 벗어나 책임감과 애국심이 강하고 국가 이익과 사회 안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청년세대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화난스판대학 예원칭(葉文淸)의 ‘바링허우 가치관 조사(2008)’에 의하면 성취감·평등·자유·관용·지혜·책임감이라는 6개 단어 중 23%가 자유를, 21%가 성취감을, 17%가 관용을 선택했다. 바링허우가 자유를 숭상하며 자아실현을 갈망한다는 사회 통념과 일치하는 결과다. 또한 가족·친구·사업을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하라는 질문에 50%가넘는 사람이 가족을 선택했다. 가족 위주의 전통 관념이 계승된 결과다. 직장 선택에서는 52%가 급여보다 자아성취를 우선시했다. 회사의 이익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성향도 엿보였다.

‘자유’는 VANCL 광고에서도 나타났듯 바링허우의 가치지향을 표현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다. 기성세대에 비해 더 개인주의적이고 도시적이며,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실리와 이득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자유라는 외투를 입고 있다.
필자의 관찰로는 바링허우의 가치관은 ‘가족’보다 ‘사랑’이 더 적합한 것 같다. 바링허우 사이에서 독신귀족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급증하고 자녀를 거부하는 신혼세대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이 사회문제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왕뤄단이 연기한 드라마 <분투>의 여주인공 미라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성 간의 사랑은 매우 중요시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베이징대학에 신입생이 입학했다고 하자. 그들은 동성친구보다 이성친구 사귀기에 더 열중하고, 한 번 연애를 시작하면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과 식당과 도서관에 거의 1년 내내 붙어 다닌다. 중국의 대학생들도 어학을 비롯한 각종 자격증 따기에 열중하는데, 그곳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연애가 젊음의 특권이기는 하나 그 정도가 약간 심하다.
우리나라 FM 라디오에 해당하는 베이징음악방송에 주파수를 맞추면 밤 10시부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아나운서의 연애 강의가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져 나온다. 미라이류의 대사도 비일비재하다. 외동자녀로서의 외로움을 이성을 통해 달래려는 욕구가 이성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할 만큼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은 온통 연애이야기다.

바링허우가 드나드는 인터넷 토론방에는 스스로의 가치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이상을 위해 살기, 순수한 사랑, 충실한 인생”(페이양,2008.10.9)
“내가 숭상하는 가치는? 현재로서는 돈과 안정적인 공간과 사랑이다.” (샌디, 2008.4.3)
“바링허우가 추구하는 현실을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새로워야 하고 내게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샹쉬에메이, 2008.4.2)

바링허우 스스로가 쓴 자신들의 특징도 재미있다.
1.자기 연필을 찾지 못한다.
2.자신의 헤어스타일에 영원히 만족하지 못한다.
3.모든 전자제품은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4.셀프서비스를 선호한다.
5.‘통쉐(학급친구)’라는 호칭을 가장 많이 쓴다.
6.아이와 노는 것은 좋아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싫어한다.
7.아는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많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안 한다.
8.밤샘을 밥 먹듯한다.
9.유머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10.별자리 운세에 집착한다.
11.5·1절, 10·1절 등 연휴에는 절대 여행하지 않는다.
12.낮잠이 취미다.
13.자기가 늙었다고 생각한다.
14.2분의 시간이 있다면 1분은 숭배, 1분은 멸시에 사용한다.
15. 영원히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16. MSN의 필명을 매일 바꾼다.
17. Google을 뒤져 답을 찾는다.(<랴오닝청년> 2008년 1월)

바링허우는 중국 소비시장의 주체이자 소비문화의 나침반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중국 기업들조차 기성시대에 생소한 이들 바링허우의 소비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논의가 분분하다.
바링허우는 6명의 눈동자가 키워냈다고 한다. 부모와 조부모와 외조부모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결혼하면 12명의 눈동자가 이 가정을 지켜보는 셈이 된다. 외동아들인 신랑과 외동딸인 신부에게 양쪽 가문의 관심과 재산이 집중된다. 그래서인지 바링허우의 40%가 부모로 부터 독립을 원치 않는다. 대도시 중산층 자녀인 현재의 대학생과 회사원들은 양쪽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을 미래의 막강한 소비 군중으로 이미 중국 사치품 소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CCTV에서 요즘 유치원생의 신풍속도로 명함 돌리기를 취재한 것을 보았다. 유치원 교사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받기 위해 아이 명함을 만들어 돌리는데, 그 명함에는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직책까지 기재해 어떻게든 담임 교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며, 실제로 그 명함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탄탄한 재력과 ‘관시(關係·인맥)’를 갖춘 신흥 가족군이 탄생한 것이다.

초등학생들에 대한 투자도 만만치 않다. 중국도 영어교육광풍이 일고 있는데, 2주일에 2만 위안 상당의 영·미권 영어캠프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필자가 머무르는 숙소 앞에는 주로 베이징대학 부속초등학교와 칭화대학 부속초등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어린이 영어학원이 있는데, 1년 단위로 학비를 결제해야 하며 주 3회 1년 학비가 300만원 수준이다.

푸얼다이와 핀얼다이
2010년 7월 12일자 주간지 <난두저우칸(南都周刊)>의 통계에 의하면 2009년도 대학입시에 참여한 고교 졸업생이 834만 명인데 그 중에서 84만 명이 외국 유학을 선택했으며, 올해는 약 100만 명의 고교 졸업생이 유학을 선택할 전망이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유학은 단연코 영·미권이다.
대규모 유학업체 사장인 J(54·김일성대학 졸업)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으로 가는 중국인 유학생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걱정했다.
“요즈음 미국 유학이 쉬워졌어요.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유학 자격을 대폭 완화하면서 영어를 하지 못해도 학비만 내면 학생을 다 받아요. 우수하고 부유한 학생은 한국 유학 안 와요. 1년에 20만 위안(약 4000만원) 이상 쓸 수 있는 학생은 영국·미국·캐나다 등지로 가고, 1년에 7만 위안(약 1400만원) 미만의 유학비용을 원하는 학생이 한국유학을 선택해요.”

필자가 베이징에서 만난 중산층의 바링허우들은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외국 기업에 근무하는 Y(30·베이징 출신)는 얼마 전 ‘나체혼’을 했다. 나체혼은 혼수를 일절 장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두 사람이 결합하는 이른바 신세대의 혼인 풍속이다. 친척이나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양가 부모만 참석하는 비밀혼으로, 사회에서는 여전히 미혼으로 통용된다. 휴가 때마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그에게 한국에는 왜 안 오느냐고 물었더니 “가까워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여행에 별반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시장경제와 상업매체의 발달 및 외동자녀라는 삼각고리로 인해 바링허우의 소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높다. 가정에서 부모는 약자이고, 무엇을 먹고 입고 쓸지는 바링허우가 결정한다.

바링허우의 소비 양식은 세속낭만주의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바링허우는 자신의 개성을 소비의 중심에 놓는다. 바링허우는 남의 이목을 끄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한다. 매우 고급 제품이 아니어도 개성이 강하고 특색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질보다 스타일을 중시한다. 몸 중시, 쾌락 추구, 도시 소비, 인터넷 소비가 그들의 특징이다. 특히 인터넷은 그들에게 없어서는 될 중요 부분이다. 그들의 가장 큰 시간과 돈과 정열이 인터넷 위에 쏟아진다. 인터넷을 통해 상품 정보를 먼저 알고 부모에게 구매를 요구한다.
-궈징핑(郭景萍), <바링허우의 소비 패턴;세속낭만주의>-현재 대학생이거나 회사원인 바링허우는 새로운 가치관념, 생활패턴, 소비성향으로 인해 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링허우의 소비행위는 첫째, 개성적 소비를 특징으로 한다. 상품을 질이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물건과 좋아하지 않는 물건으로 나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제일 좋은 상품이다.

둘째, 유행에 민감하다.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으므로 소비욕구가 소비능력보다 훨씬 높은 양상을 띤다. 셋째, 유명 브랜드를 추구한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브랜드는 유명해야 한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으며, 이 브랜드 저 브랜드로 옮겨 다니는 경향을 보인다. 넷째,소비 체험을 중시한다. 물건의 질이나 특색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느낌·분위기를 중시한다.
-류우야링(劉亞玲), <바링허우 소비자 소비행위 특징>-중국에서 새로운 소비 주체이자 미래 시장의 중견 역량으로 떠오른 바링허우의 가치관과 소비성향에 한국 기업은 주목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중국 중산층의 한국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3년 기한의 관광비자를 발급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저가 관광으로 인식된 한국의 이미지
를 개선하는 것이다.


질보다 유행과 느낌, 내게 의미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추구하는 영 차이니즈를 목표로 한다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 ‘한국 여행’ 하면 떠오르는 느낌, 한국 브랜드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중국은 한 가정 한 자녀이므로 부와 인맥과 지위가 세습되기 쉬운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를 세습한 2세대를 푸얼다이라 하고, 사회적 지위를 세습한 2세대를 ‘관얼다이(官二代)’라고 하며, 가난을 세습한 2세대를 ‘핀얼다이(貧二代)’라고 한다. 난징대학 주젠화(祝建華)의 <푸얼다이형성과 특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도 통계로 중국의 억만장자는 1만8000명, 천만장자는 44만 명, 백만장자는 통상 인구의 3.3%인 4200만 명 규모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는 약 300만 개의 민영기업이 있다. 이들 창업 1세대의 90%가 기업을 외동자녀에게 승계하기를 원하며, 향후 10년 사이에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기업 승계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요즘 중국 사회는 부호 2세대, 즉 푸얼다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 푸얼다이의 상당수가 해외유학파다. 또 창업 1세대의교육 정도가 높을수록 영국 유학을 선호하고, 낮을수록 미국 유학을 선호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두 얼굴의 차이나, 영 차이나
핀얼다이는 가난을 세습한 바링허우다. 농민이나 노동자의 교육받지 못한 자녀뿐 아니라 교육받은 자녀, 즉 대도시에 유학해 대학을 졸업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졸업자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개미처럼 대도시 빈민가에 모여 산다고 해서 ‘개미족(蟻族)’이라고 불린다. 정규직을 찾지 못하고 임시직 월급을 받아도 치솟는 방값을 내기에 급급해 삶이 안정되지 못하는 개미족. 취업문제와 주택문제로 불만을 품은 고학력집단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원저우(溫州) 하이뤄(海螺)그룹의 승계자 샤오샤오칭(邵少卿·26)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영수업 겸 그룹의 자회사를 운영하는데 창업자인 아버지로부터 항상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중국 <경제관찰보> 2010년 6월10일자)
“너는 최고 교육을 받았으니 나와 다르다. 너는 선진적 이론과 생각, 너만의 사유방식이 있을 것이다. 아무 염려 말고 어떤 사업이든 생각대로 시도해보아라. 만일 틀린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함께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면 된다.”
경우에 따라 엄청난 부담이 될 이 말에 샤오샤오칭은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회사에서 일한다.
인터넷 토론방에서 발견한 바링허우의 독백은 이러하다.“우리의 부모 세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경제 기반을 마련해 주었지만 엄청난 부담도 함께 주었다.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는 경제와 문화 등 각 방면에서 부모 세대를 초월하는 동시에 부모 세대가 남긴 각종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늘 들려주던 ‘조국의 희망은 너희다. 너희는 조국의 미래다’라는 시구를 이제는 ‘조국의 미래는 우리다’라는 말로 바꾸어 새겨야 한다.
목표를 가지고 ‘분투’하면 미래가 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우리는 ‘당혹스러운 세대’다.” (<신잉얼> 2008년 4월 1일)

중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인해 올드 차이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중국 사회는 오히려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영 차이나다. 특히 중국의 기성세대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특수한 10년으로 인해 굴절된 가치관과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교육의 소외를 경험한 세대다. 따라서 그들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업적이 있음에도 차세대, 즉 경제적 풍요 속에 국제적 감각을 키우며 자란 고학력 세대인 후배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후배 세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때가 되면 기꺼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중국에서 40대 시장·총장·성장이 출현하는 ‘40대 기수론’의 배경이다. 따라서 이제 20, 30대인 바링허우도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국인들의 격언에 “진짜 좋은 술은 아무리 깊이 묻어 놓아도 사람들이 다 안다”는 말이 있다. 좋은 술은 그윽한 향이 널리 퍼지므로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비단장수 왕 서방은 실크 속옷에 누더기 겉옷을 걸친다는 말도 있다. 재부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인은 속을 알 수 없고, 자신을 은폐하고 ‘차부둬(差不多·그럭저럭)’를 외칠지언정 ‘예스’나 ‘노’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올드 차이니즈다.

이제 우리 눈앞에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있는 만큼 누리고 싶어 하고, 남에게 비치는 모습을 중시하는, 유행과 개성에 민감한 영 차이니즈. 애국심과 책임감과 이기심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국제무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 당당하고 활기 있는 바링허우가 다가오고 있다. 덜 권위주의적이고 더 개성적이며, 더 유연하고 더 열려 있는, 그래서 미래가 있는 영 차이나를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김종미

[echina@pku.edu.cn] 서울 출생. 이화여대 졸업. 서울대 중문과 석·박사. 중국 베이징대의 한국인 최초 외국인
전임교수를 거쳐 경희대에서 베이징대와 공동으로 <한중미래 지도자과정> 운영. 최근에는 이화여대에서 한국 최초의 베이징대학 복수학위과정인 <테솔전공(중국어 테솔)>을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베이징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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