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피해자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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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마을 행사장. 이곳에서는 마을 입주 기념축제와 함께 지뢰사고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이 마을에는 1967년 150명이 처음 들어와 지뢰를 제거하며 황무지를 개척했다. 이들 중 23명이 지뢰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들은 입주 때 1인당 1만9800㎡(6000평) 땅의 경작권과 33㎡(10평)짜리 슬레이트 집을 받았다. 대신 지뢰가 터져 죽거나 다쳐도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군 부대에 제출했다.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유철훈(74)씨는 “ 휴전선 목침 철책을 현대식으로 바꾸기 위해 그곳에 묻힌 지뢰를 제거하는 것도 다 우리 손으로 했는데 남은 건 불구가 된 몸뿐”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오유리에 사는 박춘영(84) 할머니는 3대(代)가 내리 지뢰피해를 당했다. 박 할머니는 63년 뒷산에 고사리를 채취하러 갔다가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잃었다. 93년에는 셋째 아들이 지뢰를 밟아 역시 발목이 잘렸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앓다가 지난해 12월 사망했다. 95년엔 둘째 아들과 손자가 지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박 할머니 가족은 단 한 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했다. 박 할머니는 “나라가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53년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전국의 지뢰 피해자는 254명(사망 80명, 부상 174명)이다. 대인지뢰 금지운동을 펼치고 있는 조재국(57) 연세대 교수는 "보고되지 않은 민간인 피해자는 10배에 가까운 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송을 통해 국가배상을 받은 이는 극소수다. 국가배상법 소멸시효(3년)를 넘겼거나 법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지뢰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2000년 이후 세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회기가 만료됨과 동시에 자동 폐기됐다. 지난 1월 발의한 특별법은 국방위 소위에서 8개월째 계류 중이다. 법무법인 와이비엘의 김다섭(49) 변호사는 “ 지뢰 피해자들을 ‘안보재해’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특별법이 꼭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 우리 주변에 방치된 지뢰 - 전국 지역별 분포도인터랙티브

탐사1·2팀 김시래·진세근·이승녕·강주안·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뉴욕중앙일보 안준용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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