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카스트로 “공무원 10% 감원” 쿠바 사회주의 경제 개혁 칼 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쿠바 의회에서 형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대화를 나누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넘겨 받기전인 2003년 사진이다. [중앙포토]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메스를 들었다. 쿠바식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수술하기 위해서다. 그가 도려낼 첫 환부는 공무원이다. 그는 13일(현지시간) 510만 명의 공무원 중 “내년 4월까지 50만 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 3월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에서 그가 “전체 공무원 5명 중 1명꼴인 100만 명은 남아도는 인력”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쿠바 국민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이날 전체 공무원의 10%인 50만 명 감원 계획이 전격 발표되자 쿠바 사회는 동요하고 있다. 쿠바 유일 노조로 300만 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쿠바노동자연맹도 “인력 감축은 즉각 시작돼 내년 4월까지 마무리될 것”이라며 정부를 거들었다. 대신 쿠바 정부는 자영업자를 키우기 위해 국가 소유의 부동산이나 산업시설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임대해주기로 했다.

쿠바 혁명의 아버지 피델의 동생이자 동지로 2008년 2월 권력을 승계한 라울은 그동안 사회주의 경제 체제 개혁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그는 취임 직후 “사회주의는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지 소득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는 폭탄 발언으로 쿠바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 마오쩌뚱(毛澤東)의 추종자이기도 한 그는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시장경제를 이식한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꿈꿔왔다. 취임 후 피델이 금지한 골프장 출입이나 휴대전화·컴퓨터 소유 금지 조치도 풀었다. ‘철밥통’ 공무원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성과급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형 피델도 지난 9일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쿠바식 모델은 자국에서조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인정한 바 있다. 이번 공무원 50만 명 감원 조치는 라울이 찻잔 속에서 추진해온 사회주의 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을 흔들어 놓으면 민간 분야에서 새 살이 돋아날 거란 기대에서다. 정부가 통제해온 농산물 유통과 소기업 소유도 지난달부터 풀어줬다. 그러나 그의 개혁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해온 탓에 민간기업이 거의 고사했다. 게다가 미국의 경제 봉쇄도 앞으로 라울이 풀어야 할 과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