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차례음식 전문업체 경영하는 종가 맏며느리 고경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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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명절만 되면 차례상 차리는 일로 골치가 지끈거리는 우리나라 주부들.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서 요즘은 차례 음식도 주문.배달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설 대목을 맞아 벌써 며칠째 직원들과 밤샘 작업을 한다는 제사음식 전문회사 다례원의 고경숙(44) 사장. 그는 "몇년 전만 해도 '어떻게 조상께 밖에서 사온 음식을 올리나'하는 거부감이 컸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달라진 세태를 전했다.

"맞벌이 부부는 늘어나고 식구 수는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이며 식혜.나물.나박김치까지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거든요. 여럿이 달려들어도 며칠씩 걸릴 판인데 일 하는 주부가 혼자 장만하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일까. 요새는 시부모가 며느리 힘들까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손님들이 '시어머니 알면 안되니까 음식을 회사 이름 박힌 상자 말고 과일 상자에 넣어 보내달라'거나, '잠시 어른들 외출한 틈을 타서 배달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게 다 옛일이 됐네요."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일을 하게 된 고씨는 종가(宗家)의 맏며느리다. 스물셋에 시집 가 추석.설에 지내는 차례를 포함해 1년에 제사를 열세번씩 치르며 20여년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친정 아버지가 막내셔서 시집 가기 전엔 제삿상을 구경도 못했어요. 몰랐으니까 했지 알았으면 결혼 안한다고 했을 거예요."

시집 가자마자 시아버지가 별세해 탈상(100일)할 때까지 보름마다 제사(삭망)를 지내느라 진땀을 뺐다는 그는 시어머니께 수시로 묻고 요리학원도 다니며 차츰 '제사음식 전문가'가 돼갔다. 그러다 문득 "나처럼 고생하는 주부가 많을텐데…"하는 생각에 1998년 가족을 설득해 사업을 시작했다. 1년에 열세번도 모자라 아예 날마다 제삿상을 차리게 된 셈이다. 고씨는 "그래도 회사에서 만든 음식으로 우리집 제사까지 지내기 때문에 편해진 측면도 있다"며 웃었다.

전문가를 만난 김에 차례 음식 중 가장 번거로운 전 부치기 요령을 묻자 그는 "달걀 푼 것과 밀가루를 살짝만 입힐 것, 센 불이 아니라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힐 것, 자꾸 뒤집지 말고 딱 한번만 뒤집을 것"을 조언했다.

글=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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