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분석] 집안싸움 한국권투 아시안게임 못 나갈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KABF)과 갈등을 빚던 국제복싱연맹(AIBA)이 한국의 회원 자격을 잠정적으로 정지시켰다.

AIBA는 13일(한국시간) 대한체육회 등에 우칭궈(64·대만) AIBA 회장 명의로 공문을 보내 “KABF와 유재준 전 연맹회장이 ‘새 집행부를 뽑으라’는 AIBA와 대한체육회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따라 AIBA는 한국의 회원 자격을 잠정적으로 박탈한다”고 통보했다. 회원 자격을 잃으면 11월 아시안게임 등 AIB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할 수 없다. 지난해 5월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KABF와 AIBA 간 전말을 살펴본다.

◆AIBA 회장 선출 과정이 발단=우칭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2006년 AIBA 회장 선거에서 20년간 국제 아마추어 복싱계를 좌지우지한 안와르 초드리(86·파키스탄) 전 회장을 제치고 당선됐다. 선거 기간 중 AIBA 집행위원이던 유재준 KABF 전무는 초드리를 지지했다. 반면 김성은 당시 KABF 회장은 우칭궈를 밀었다. 선거가 끝난 뒤 KABF 내의 유 전무 반대파는 이사회를 열어 “김성은 회장을 비방했다”며 유 전무에 대해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내렸다.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는 유 전무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징계를 견책으로 완화했다. 체육회는 ‘임원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단서도 달았다. 2007년 8월 김 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했고 한동진 부회장이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유 회장 당선으로 갈등 표면화=2009년 1월 제19대 KABF 회장 선거에 유 전무가 출사표를 던졌다. 반대파에서는 이경재 부회장(당시 프로야구 한화 사장, 현 한화그룹 고문)을 내세웠다. 첫 투표에서 양측이 10표씩 얻었다. 재투표까지 했지만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당시 의장(이수남 대전시연맹 부회장)이 캐스팅보트를 해 유 전무 손을 들어줬다.

반대파는 유 회장 당선에 반발했다. “KABF 정관에는 ‘견책 이상 징계를 받으면 임원 활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는 데도 의장이 견책 징계를 받은 유 전무의 손을 들어준 것은 문제”라며 소송을 냈다. 반대파는 또 회장 선거에서 투표를 한 의장이 캐스팅보트까지 행사한 것은 ‘1인 1표의 평등주의를 위배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 2심은 피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유 회장을 곱지 않은 눈길로 봤던 AIBA는 지난해 5월 “KABF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무자격 팀 닥터를 파견했고, 또 앞서 대표 선발전에서 잘못된 계체를 승인했다”며 한국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또 유 회장에게도 AIBA 차원의 18개월 자격정지를 결정했다. 그 이면에는 반대파의 진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복싱계의 갈등이 국제 문제로 비화한 모양새다.

◆"선수 보호” 목소리는 높지만=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2월 유 회장 인준을 취소했다. 유 회장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낸 상태다. 이후 최종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김재봉 KABF 부회장, 김승철 대한체육회 이사가 KABF 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AIBA는 KABF의 정상화를 촉구했지만 성과가 없자 ‘한국의 회원자격 정지’라는 초강수를 뽑아들었다. 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볼모로 한 압력이 계속되자 유 전 회장은 9일 자진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AIBA는 대한체육회 등에 “수긍할 만한 극적인 변화가 없으면 이번 조치는 11월 AIBA 총회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조치에 따라 징계가 해제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KABF는 14일 이사회를 열고 AIBA가 요구한 새 회장 선출 및 새 집행부 구성을 논의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유 전 회장과 AIBA를 앞세운 반대파 간 갈등의 근본적인 봉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