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장 “일시적인 오해 … 영원한 형님” 라 회장 “…” 기내서도 말 한마디 안 해 이 행장 “고소 취소 등 타협 여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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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22면

28년. 신한금융지주 내분사태의 주인공 3인방, 라응찬·신상훈·이백순이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다. 이들이 유달리 남다른 인연을 과시해 왔던 터라 이번 사태의 충격은 더 컸다. 가족이나 다름없다던 이들의 유대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대결 구도는 명확하다. 라응찬·이백순 대 신상훈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 어느 쪽이 싸움에서 승리할지는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이들의 관계가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점이다.
 
라응찬-신상훈: 남이 된 멘토
라 회장은 초창기부터 신 사장을 유독 챙겨줬다. 1986년의 일이다. 당시 상무였던 라 회장이 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10시까지 현관 앞에 이발하고 오라”고 했다. 가보니 그가 영동지점장으로 발령이 나 있었다. 라 회장이 다른 임원들의 반대를 꺾고 승진 서열에서 한참 밀리는 그를 지점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후 그는 오사카 지점장, 자금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신 사장이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2003년 행장에 오른 것도 라 회장의 선택이었다.

악연 된 신한금융 3인방의 28년 인연

신 사장은 지난 2일에서 3일로 넘어가는 한밤중에 기자들을 만나서 이 얘기를 한참 했다. 신한은행이 그를 검찰에 고소한 바로 그날 밤이었다. 그는 “라 회장은 존경하는 인생의 멘토”라는 말을 세 번쯤했다. “그 양반이 나한테 해준 게 너무 많다” “일시적인 오해로 섭섭해도 형님으로서 모시겠다”고도 했다. 싸움의 상대를 라 회장이 아닌 이백순 행장으로 좁히려는 듯했다.

지난 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신 사장은 “라 회장이 왜 이 행장과 충분히 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치 라 회장은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려 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라 회장은 행동으로 둘 사이가 끝났음을 보여줬다. 9일 재일동포 주주 설명회를 위해 탄 나고야행 비행기 안에서 라 회장과 신 사장은 같은 열 맞은 편 창가에 각각 앉았다. 둘은 이야기는 물론 눈짓도 교환하지 않았다. 공항에 내려서도 서로 다른 차를 탔다. 설명회가 끝나자 신 사장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먼저 나왔다. 라 회장은 이 행장과 나란히 설명회장에서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라 회장과 이 행장이 탄 귀국편 항공기에 신 사장은 올라타지 않았다.

설명회에서 라 회장은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물의를 빚은 점을 사과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믿고 맡겨 달라. 격려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설명회에 참석한 것만으로 이 행장 쪽에 무게를 실어 줬다. 그 결과 당초 신 사장 해임에 반대하던 재일동포 주주들은 ‘이사회에 결정을 위임한다’는 중립적인 결론을 냈다. 이에 대해 라 회장은 “주주들이 이해했고 생각하는 대로 됐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신 사장과 본인의 거취에 대해서도 질문이 쏟아졌지만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신상훈-이백순: 적이 된 선후배
신 사장과 이 행장은 한땐 좋은 인연이었다. 신 사장이 오사카 지점장으로 지낼 때 이 행장이 대리로 3년간 함께 근무했다. 당시 신상훈 지점장이 거래처에 갈 때 차를 운전해 같이 다녔던 게 바로 이백순 대리였다. 이 행장은 지난해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2시간 넘게 운전해 신 사장과 재일동포 주주 문상을 갔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이 행장은 “오사카에서 신 사장의 열정과 부지런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새로운 눈을 떴다”고 말했다.

그런 이 행장이 지난 2일 오전 신 사장을 찾아갔다.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소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5개월 동안 비서실을 통해 준비한 조사자료를 근거로 내밀었다.

고소 사태 이후 두 사람은 차갑게 돌아섰다. 신 사장은 2일 밤 인터뷰에서 “다 아랫사람을 잘못 관리한 내 부덕의 소치” “일일이 얘기하면 이백순과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행장을 강하게 탓하는 말이었다. 라 회장에 대해선 “끝까지 모시겠다”면서도 이 행장에 대해 묻자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그 사람도 달라지겠지”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 행장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의 주장은 한결 같다. “워낙 심각한 비리여서 검찰 고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본질이 어디까지나 신 사장 개인비리라는 걸 강조한다. 고소 취소 등 타협의 여지에 대해서도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9일 나고야 설명회에서도 이 행장은 신 사장의 혐의에 대해 강도 높게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많은 고민했다. 선배인 신 사장께 죄송하지만, 조직의 장으로서 문제를 덮을 순 없었다”며 주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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