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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빵처럼 골라 살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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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동네에 빵집이 한 곳 있는 경우와 여러 곳 있는 경우 어느 쪽이 소비자 선택의 폭과 만족도가 크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다. 빵집이 여러 곳 있는 경우 소비자는 여러 빵집을 비교해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적절한 가격에 골라 먹을 수 있다. 또한 빵집들도 소비자의 필요에 맞게 보다 맛있는 빵을 저렴하게 팔고자 더욱 노력할 것이다.

이제 빵을 전기로 바꾸어 보자. 빵과 달리 전기를 파는 곳이 여러 곳이어서 소비자가 선택해 전기를 사는 모습이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매우 생소하게 보인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일상의 일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국민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정부는 2001년부터 단계적으로 경쟁을 도입하여 궁극적으로 전기도 소비자가 골라 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부문은 비록 자회사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미 2001년에 한전에서 분리되었다. 제한된 형태이지만 현재 발전회사들은 한전에 전기를 팔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2004년 배전 및 판매부문을 한전에서 분리하는 것을 중단한 이후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전력산업 경쟁 도입에 대한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이 계속되었다. 정부는 지난 8월 전력산업구조 발전방안을 최종적으로 발표하였다. 기본 방향은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공기업의 자율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한전 독점 형태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옳은 방향이다. 현행 한전, 한국수력원자력, 화력발전 5사 체제를 유지하고 이들을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해 한전 대신 정부가 발전회사의 경영성과를 평가함으로써 더 이상 발전회사들이 한전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한 것도 진일보한 조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청사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전력산업에서 경쟁 도입의 최종적인 도착점은 빵과 같이 전기도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이 도착점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결여되어 있다. 현재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경쟁을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이지 현재의 틀을 벗어나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발전부문의 규모의 경제와 공급의 안정성 때문에 전력산업이 독점체제로 운영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전부문에 더 이상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전기도 일반 재화처럼 시장에서 거래되어도 공급의 안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친시장적이라는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위한 경쟁 도입의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정부는 소비자 선택을 위한 구체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왕규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