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괭이·쟁기·꽃 … 문명을 바꾼 사소한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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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잭 구디 지음
김지혜 옮김, 산책자
440쪽, 2만3000원

90년대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고 각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은이는 영국 출신으로 원래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2차 대전 때 포로수용소에서 인류학의 고전인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등을 접하고 전공을 바꿨다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또 단순한 서양 우위론이나 문화의 다양성만 되풀이하는 구식 인류학에서 벗어나 세계문화의 발달과 개성의 원인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시도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그는 괭이나 꽃 같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물건에 주목해 문명을 읽어낸다. 문명이 발달하기 위해선 일단 부를 축적해야 하는데 그 바탕은 괭이와 쟁기 등 청동기 시대 금속 농기구의 사용이 분기점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괭이의 사용 여부가 글쓰기의 전문화나 논리·사랑의 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금기도 문명을 파악하는 훌륭한 열쇠가 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말고기 먹기는 야만스런 행위로 비쳤지만 이는 말이 군사력이나 노동력의 원천으로 사용되었던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기계문명의 발달로 말의 효용이 줄어들면서 말고기가 ‘영양식’으로 바뀐 인식 변화를 그 증거로 든다.

사랑·문자의 세 가지 키워드로 동서양의 역사발전을 읽어내는 시도는 유익하고 흥미롭다. 단 번역 탓인지 여기저기 걸리는 대목이 적지 않아 읽는 데는 약간의 인내를 요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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