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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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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육부-모든 학교들의 위에 군림하는 정부의 한 기관. 주로 여러 가지 황당한 정책을 발표하거나 조령모개로 정책을 바꿔 일선 교사들과 학생들을 당황시키는 업무를 한다'.


'교육부 장관 교체 제도-교육제도의 참신성을 위해 교육부 장관을 자주 바꾸는 제도'. 어지간히 신랄하다. 우리 고등학생들이 만든 '학교 대사전(myhome.naver.com/ssanzing2)'사이트의 'ㄱ'항목에 올라 있는 설명이다. 서울 초등학교에 일제고사가 부활하고 경제부총리 출신이 교육부총리에 임명되는 현실에서 읽으니 더 실감난다. '이 사전은 반드시 유머 감각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일러두기가 아니더라도 절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교실은 붕괴되고 학교는 학원에 졌다지만, 아이들은 이렇듯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 있다.

대한민국을 떠나겠다는 사람 열에 아홉이 자식 교육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때에 '학교 대사전'은 그 까닭을 족집게처럼 짚어준다. 대학은 인생의 목표이며, 행복은 절대 성적순이다. 생활기록부는 학생의 온갖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어 미사여구로 수식되는, 대학에 보여주기 위한 대외용 문서다. 자주 바뀌는 입시 정책에 희생되는 불쌍한 학생은 실험용 쥐다. '네'가 학교 교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고, 벌점은 학교에서 주는 점수 중에 유일하게 받기 쉬운 점수이며, 입학식을 '앞으로 몇 년간 그 학교에서 겪을 재난의 서막'이라 푼다. 이런 사전풀이를 연습장에 적어나가며 아이들이 느꼈을 아픔과 슬픔이 가슴에 못처럼 박힌다.

교육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할 비법을 내놓는 후보가 있다면 대통령으로 뽑겠다는 이들이 대한민국 부모다. 애꿎은 이민의 꿈을 부추기는 오락가락 교육정책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공공의 적 1호다. 교과 과정을 잘 따라간 선량한 학생이 좋은 대학교에 가기 힘들게 수능문제를 출제하는 교육부의 악취미를 비판하는 '학교 대사전'의 칼날은 날카롭다. 있는 집 자식만 점점 더 좋은 대학 간다는 현실 인식도 보인다. 없는 집 아이가 내뿜는 절망의 한숨이 닫힌 교문을 울리고 있다.

'학교 대사전'이 1월 말 홈페이지를 열자 사흘 만에 방문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깊은 병이 든 한국 교육을 방증한다. 건강한 아이를 병자로 만드는 학교 대수술이 시급하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