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이남훈 한의원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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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는 유래 없는 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가치관의 변화와 경기의 불황이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한편에서는 아이를 갖고 싶어도 임신이 안 돼서, 또는 자꾸 유산이 돼서 고민하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임신이 성립되려면 다음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擇地(택지)’라는 것으로 ‘배란’을 말하고, 둘째는 ‘養種(양종)’으로 ‘사정’을 말하며, 셋째는 ‘乘時(승시)’로 ‘수정’을 의미하고, 넷째는 ‘投虛(투허)’라는 것인데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면 임신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환경호르몬 등의 문제로 남성불임이 점차 증가추세다. 정액 량이 점점 줄고, 정액 속에 정상정자의 숫자가 부족해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정기를 보강하는 처방으로 정자의 숫자를 늘리고 정자의 운동성을 높여줄 수 있다.

여성 불임의 경우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면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착상’이 잘 안 되는 것이 원인이다. 특히 습관성유산처럼 임신이 되었다가도 초기에 자꾸 유산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자궁이 약해서 착상이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인데, 결혼 전에는 규칙적이던 월경이 결혼 후 2~3주씩 늦어지는 경우 실제로는 착상이 안 되어 유산을 자꾸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착상이 안 되는 경우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을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 시험관시술 성공률이 30%정도라는 것은 불임의 원인이 수정이 문제가 아니라 착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혈(血)이 부족한 경우인데,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거나 지나친 스트레스로 화(火)가 쌓여서 이로 인해 음혈이 손상되어 태아를 기를 수 없게 된 경우다. 비유하면 밭이 너무 건조해서 싹이 나지 않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생리불순, 불면증, 변비가 잘 생기고, 피부가 건조해 피부트러블이 잘 생기며, 질이 건조하여 성교 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둘째는 몸에 습담(濕痰)이 많은 경우인데, 대체로 음식을 잘 먹고 비만한 경향이 많다. 항상 몸이 무겁고 피로하며, 잘 붓고, 어깨나 관절이 잘 아프며 피부가 거칠면서 안색이 어둡고 탁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비유하자면 밭에 물이 너무 많아서 싹이 트기도 전에 썩어버리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냉·대하가 많고 나중에 자궁에 혹(근종)이 생기기도 한다.

셋째는 몸이 너무 차거나 허약한 경우다. 소화도 잘 안되고 말랐으며, 손발이 차고 아랫배도 차며, 예민한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자궁을 비롯해서 하초(下焦)의 기능이 다 약해 대소변이 시원치 않으며, 묽은 냉이 많고 난소에 물 혹이 생기기도 한다. 비유하면 날씨가 춥고 냉해서 싹이 나지 않는 경우다.

원인을 잘 찾아서 치료를 하면 점차 몸이 건강해지며 따라서 자연임신의 가능성도 크게 높아지게 된다. 밭이 씨를 키울만한 조건이 안 되는데 자꾸 씨를 뿌려봐야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무조건 임신만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임신도 잘 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요즘 같은 저 출산시대에 불임과 유산으로 고통 받던 부부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보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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