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골프 빅매치 자존심 건 ‘샷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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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일전은 뜨겁다. 연날리기를 해도 한·일전은 재미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축구나 야구뿐 아니라 골프에서도 한·일전 승부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한·일 양국의 골프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열리는 무대는 10일 부터 제주 해비치골프장에서 사흘간 열리는 현대캐피탈 인비테이셔널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륙대항전인 라이더컵이 열릴 때는 두 대륙이 들썩들썩한다. 오랫동안 대회를 치르며 전통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도 골프에서 인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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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한국에 골프가 들어온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다. 현재의 서울 효창공원 자리에 1921년 경성 철도국이 코스를 만들면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골프를 전해주지 않았다. 날이 더울 땐 배가리개만 한 채 필드로 나오는 일본인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일본 전통 의상인 하카마 옷에 머리에는 띠를 두르고 “에잇!”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클럽을 휘둘렀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무사도에 어긋난다면서 퍼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코스 밖으로 OB를 많이 낸 탓에 행인들과 충돌도 잦았다.

한국의 첫 프로골퍼인 연덕춘은 1941년 최고 권위의 일본 오픈을 제패했다. 일본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들이 더 억울해 하는 것은 우승컵이다. 매년 일본 오픈이 열릴 때마다 “연덕춘이 가져간 우승컵을 반납하지 않았다”며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우승컵은 중국 주(周) 나라 시대 향로를 모델로 하여 공들여 만든 것이었다. 연덕춘의 우승 이후 대회는 태평양 전쟁으로 중단됐다. 이어 터진 한국 전쟁 통에 우승컵이 사라졌다. 이 탓에 일본 오픈 우승자는 연덕춘이 분실한 컵의 모양을 본떠 만든 복제품 컵을 받고 있다.

일본은 한국 오픈에 나와 복수를 했다. 한국 오픈 창립 4년째인 1962년부터 일본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연일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한국의 군자리 코스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엔 한국 골프가 무섭게 성장하면서 양팀의 전력은 백중세다. 그래도 신경전은 뜨겁다.

미국에 가기 전 일본 투어에서 활약했던 최경주는 “일본에서는 갤러리가 은근히 우승을 방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승을 하기가 미국보다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4년 열린 한·일전에서 양용은이 연장전에서 먼거리의 퍼팅을 성공시킨 덕분에 일본을 꺾었다. 당시 일본 투어에서 뛰던 양용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것도 당연했다.

일본팀 단장인 아오키 이사오는 “한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겨야만 한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가겠다”고 투지를 보였다. 2004년 열린 대회에서는 연장전 끝에 패배한 만큼 이번엔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한장상 단장도 일본에서 10년 넘게 활약했다. 한 단장은 “일본에서 설움을 받았지만 한·일전이 복수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이고 욕심이 너무 강하면 이기기 어려운 것이 골프”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인 한·일 프로골프 대항전은 첫날 포섬 매치 , 둘째날은 포볼매치 , 사흘째는 일대일 싱글 매치 플레이로 열린다. 총상금은 70만달러(약 8억4000만원). 이긴 팀이 40만달러, 진 팀은 20만달러를 받는다. 또 마지막날 싱글 매치 플레이의 승자는 1만달러 씩을 받는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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